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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사회적 합의가 중요, 기자들이 직접 질문해 보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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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08면

미국에서 수년간 안락사 논쟁을 일으켰던 테리 샤이보(오른쪽)는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에서도 웃는 듯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중앙포토

6일 오후 3시 서울 공덕동의 서부지방법원 305호. 재판장 김천수 부장을 비롯한 민사 12부 판사 3명이 법정에 들어섰다.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과 관련된 소송이 아님에도 10여 명의 기자들로 메워진 방청석의 취재열기에 재판부는 물론 양측 대리인인 변호인도 놀란 눈치다.

역사적 판결 앞둔 국내 첫 ‘존엄사 소송’ 마지막 변론 현장

원고 측이 김씨의 신체감정을 의뢰한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종식 교수가 증언석에 올라섰다. 이날 변론은 무엇보다 김씨의 ‘회생’ 여부에 질문이 집중됐다. 먼저 원고 측 신현호 변호사가 나섰다.

“김씨의 상태는 감정 결과 의식을 잃은 지난 2월부터 8개월 내내 비슷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며칠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도 있나.”

“가능하다.”

“뇌사와 비교해 김씨의 상태를 계량화한다면.”

“정상을 0, 뇌사 상태를 100으로 볼 때 김씨는 90 정도다. 뇌사에 가깝다.”

이번엔 피고 측 신동선 변호사의 차례.

“김씨의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은.”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는데 의식이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대뇌 피질 부분이 전부 파괴돼 있었다. 다만 뇌간의 일부가 살아있어 반사운동은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뇌사는 아니다.”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면 곧바로 사망할 수 있는가.”

“숨쉬는 기능이 100%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기계를 끄면 숨 쉴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원고 측 질문.

“캐나다에서 오래 진료해본 이 교수의 개인적 경험 등을 비춰볼 때 김씨의 치료가 의미 있느냐.”

“의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뇌가 거의 다 망가져 있고 숨조차 스스로 쉴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 외에 수분이나 영양 공급은 이런 경우 캐나다에서 어떻게 하나.”

“수분이나 영양 공급도 치료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는 의미 없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공급하지 않는다.”

다시 피고 측 질문.

“치료가 의미 없다는 건 그냥 중단해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두라는 의미냐.”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드디어 재판부의 질문.

“김씨가 현재 상태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어느 정도냐.”

“단순 외상으로 인한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라면 1년 내에 사망할 확률이 50% 정도다. 그러나 김씨는 뇌 손상이 심해 숨을 혼자서는 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식물인간보다 사망률이 높다. 생명유지장치를 그대로 두더라도 총 1년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생각한다.”

“만의 하나 김씨가 의식을 되찾는다면 다른 기능은 어떤 상태일 것으로 보느냐.”

“식물인간 이상의 상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여기서 잠깐 지금까지의 소송 과정을 돌아보자. 김씨가 의식을 잃은 건 2월 18일. 폐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심폐정지’ 상황이 발생했다. 응급처치로 살아나긴 했지만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해 오고 있다. 폐암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혈액검사에서 골수성백혈병(혈액암)의 징후가 발견됐다. 조직검사는 하지 못했지만 의료진은 90% 이상 암을 확신하고 있다.

문제는 김씨의 자녀 4남매가 의료진에 퇴원을 요구해온 것. “평소 깔끔했던 어머니가 다시 의식을 찾을 가능성도 없는데 중환자실에서 벗은 몸에 시트 하나 걸치고 인공호흡기와 소변줄·수액 등을 주렁주렁 달고 누워 생명만 유지하는 모습은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더군다나 “3년 전 아버지의 지병이 악화돼 응급상황을 맞았을 때도 어머니는 당시 미국 출장 중이던 막내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생명연장장치를 이용하는 것조차 반대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 측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보호자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줬다가 담당의사가 대법원에서 살인방조죄 판결을 받은 ‘보라매병원 사건’을 예로 들면서 김씨의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김씨의 자녀들은 연명치료행위 중지 가처분 신청에 이어 헌법소원과 민사소송을 잇따라 제기했다. 이 중 가처분신청이 먼저 기각됐다. 민사 재판부가 병원 현장검증과 신체감정 등을 거치며 판결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이유다.

어느 정도 질문을 마친 재판장의 시선이 갑자기 방청석 기자들을 향했다. 김천수 부장판사는 “극히 이례적일 수 있는데, 현 소송은 법리적인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재판부 대신 물어보는 형식으로 취재진이 이 교수에게 뭐든 궁금한 것을 물어봐 달라”고 했다. 그만큼 이번 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부담감이 크다는 의미다.

이에 기자는 “이번 사건을 미국의 캐런 퀸란 사건과 비교해 달라”고 물었다. 이종식 교수는 “퀸란의 당시 상태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김씨가 더 나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판결은 28일 오전 10시 서울서부지법에서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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