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체결 단협 전면해지” 서울교육청, 전교조에 통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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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조 등 3개 교원노조에 2004년 체결된 ‘단체협약’ 전면 해지를 5일 통보했다. 노무현 정부 때 맺은 ▶학업 성취도 평가 표집 학교만 실시 ▶방과 후 학교 특기 적성 교육만 실시 ▶교원단체 사무실 제공 등의 ‘무효화’가 그 핵심이다. 3개 교원노조는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서울지부·한국교원노조(한교조) 서울본부·서울자유교원노조(자교조)다.

서울시교육청 김경회 부교육감은 이날 “노조 측에 수차례 개정 교섭을 촉구하고 부분 해지 동의를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에 따라 전면 해지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노조법 32조에는 “(노사 중) 당사자 한쪽은 해지하고자 하는 날의 6개월 전까지 상대방에게 통보하면 종전의 단체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전교조는 “4년여간 유지돼온 단협 내용을 갑자기 없애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왜 해지하나=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단체협약을 유지하면 정부의 ‘학교 자율화’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때와는 교육 상황이 바뀌어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근 일제고사 형태로 치러진 학업 성취도 평가가 대표적이다. 전교조는 단협의 “평가는 표집 학교에서만 실시한다”는 조항을 들어 거부운동을 벌였다. 다음 달 1일 발효되는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도 기존 단협 내용과 충돌한다. 특례법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하게 돼 있으나 단협에는 ‘평가 결과 비공개 원칙’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단협은 또 방과 후 학교에서는 특기 적성만 가르치도록 못 박았다. 영어·수학 등 교과 강의도 할 수 있도록 한 정부 정책과 어긋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회는 올 2월 “위법적 요소가 많다”며 단협 재협상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시교육청은 새 단협에서는 조합원의 임금·근로조건·후생복지 등에 관한 사항만 협의 대상으로 할 계획이다. ‘학교 자율화’와 상충되는 내용은 뺀다는 것이다.

◆전교조 반발=전교조 서울지부는 성명을 통해 “시교육청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조치로 교사·시민과 함께 ‘공정택 교육감 퇴진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법률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조 서울지부 김민석 사무처장은 “단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교육청에 정책협의회를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며 “교육청이 노사 관계의 기본마저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단체협상은 매년 갱신하게 돼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섭위원 구성과 배분에 대한 전교조와 자교조의 이견으로 최근까지도 협상을 하지 못했다. 김 부교육감은 “내년 6월 1일부터 기존 단협은 효력이 정지된다”며 “그러나 그때까지 전교조 등과 새 단협 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교조와는 달리 이날 자교조는 “단협 전면 해지를 환영하고 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새 협약 체결에 협조하겠다”는 성명서를 냈다. 서울시교육청에 이어 다른 시·도 교육청도 교원노조와의 단협 해지나 재협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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