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해법 먼저 양보하라" 北·美 쟁점 놓고 기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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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12일부터 열린 북핵 6자(남북.미.일.중.러)회담 1차 실무그룹 회의가 큰 진전을 보지 못한 채 14일 막을 내렸다. 참가국들은 차기 실무그룹 회의와 3차 본회담을 6월말 이전에 개최한다는 원칙적 합의만 했을 뿐 북핵 해법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쟁점사항에 대한 북.미 간 간극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도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핵문제 해결의 대전제라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이 이 원칙을 수용하고 핵 동결에 들어가면 상응조치를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도 보였다. 그러면서 상응조치로 북한이 요구해온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와 에너지 지원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CVID 원칙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근 수석대표는 회의 도중 "앞으로 우리 앞에서 CVID라는 용어도 쓰지 말라"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대신 북한은 '핵 동결 대 보상'을 집중 제기했다. 핵 폐기가 아닌 핵 활동 중지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북한이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은 것은 22일로 예정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2차 방북으로 대북 식량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 등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미국이 제기한 고농축 우라늄(HEU) 핵개발 계획도 없다고 맞섰다. 이번 회의도 북.미 양국이 "네가 먼저 양보하라"며 치열한 기(氣)싸움을 벌인 셈이다.

그렇다고 회의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가국들이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거듭 확인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회담 관계자는 "참가국 간 입장 차이가 있는 부분도 확인했지만 각 측이 제시한 모든 현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난상토론을 하면서 쟁점을 좁혀간 것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마지막날 이뤄진 북.미 양자접촉에서 양측이 타협안을 제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1월의 대선을 앞둔 미국이나 경제난 등으로 마냥 시간 끌기 전술만 쓸 수 없는 북한 모두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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