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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직무복귀] 위법사실 '조목조목'…탄핵요건 '엄격 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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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헌법재판소는 14일 결정 선고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위헌.위법 사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직무 수행 과정에서 헌법 준수 및 수호 의무를 지키지 않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했다. 경미한 위법 사안으로는 탄핵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파면으로 인한 파장이 엄청난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잣대를 제시했다.

헌재가 법률적으로는 사실상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절묘한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한 헌법 전문가는 "盧대통령에 대한 기각 결정은 굳이 일반 형사사건과 비교하자면 집행유예와 같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 선거법.헌법 위반"=헌재는 盧대통령이 총선과 관련한 여러 가지 발언을 통해 헌법과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던 선거법 위반 부분은 '유죄'로 결정났다.

지난 2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개헌 저지선' '열린우리당 지지 촉구'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조 위반으로 결론지었다.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발언이었다.

헌재는 "기자회견도 대통령의 직무집행 과정이며,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기자회견을 통해 반복적으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한 것은 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발언은 총선 후보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진 것이어서 선거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헌법 위반도 지적됐다. 지난 3월 초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은 중앙선관위가 盧대통령에게 선거법 위반을 경고하자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선관위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고, 과거 선거법은 개혁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헌재는 "李수석의 발언은 결국 盧대통령 책임"이라면서 "대통령이 경고를 받은 상황에서 현행 선거법을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은 헌법 준수.수호 의무(헌법 제66조, 69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그러나 국회의원들을 '뽑아버려야 할 잡초'라고 표현한 것 등의 국회 비하 발언은 정치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위법은 아니라고 정리했다.

◆ "재신임 국민투표도 위헌"=지난해 10월 盧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은 헌법 제72조 위반이라고 못박았다. 헌법은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대상을 국가 정책이나 법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 대표자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는 허용되지 않는다. 선거의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盧대통령이 제안만 했을 뿐 강행은 하지 않았지만 국민투표 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헌재는 밝혔다.

◆ "파면할 정도는 안 돼"=盧대통령이 헌법과 선거법을 위반하긴 했지만 파면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헌재 재판관들의 최종 판단이었다. 헌재는 盧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의 판단 기준을 그가 중대한 법 위반을 했는지와 파면으로 인한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에 뒀다고 밝혔다.

헌재는 "盧대통령은 국가 조직을 이용해 관권 개입을 시도하는 등 적극적.계획적으로 법을 위반한 게 아니다"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소극적.수동적으로 이뤄진 가벼운 위반행위로 대통령을 파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盧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못하게 함으로써 국정 공백이 오고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 간의 국론 분열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 결론이었다.

◆ "측근 비리.경제 파탄은 사유 안 돼"=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안희정씨 등의 대통령 측근 비리는 아예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盧대통령 직무집행 중에 벌어진 측근 비리만 소추 대상이 되는데 대부분의 비리가 盧대통령 취임 이전에 발생해 직무집행과 연관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으로 경제 파탄을 초래했다는 대목은 탄핵소추 요건인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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