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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법치주의 배운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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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박재현 사회부 기자

"2004 헌나 1 대통령 노무현 탄핵 사건에 대한 결정을 선고하겠습니다."

14일 오전 10시3분 헌법재판소 1층 대심판정. 윤영철 헌재 소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결정문을 읽기 시작했다. 사건번호의 '나'는 탄핵심판 사건을 뜻하며 '1'은 사상 처음이란 의미다. 尹소장은 탄핵소추의 적법성 여부부터 시작해 세가지 탄핵 사유에 대한 헌재의 의견을 밝혔다.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선거에서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盧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지적했다. 국민의 입장에선 처음 보는 '법률 명강의'가 이뤄진 것이다.

尹소장은 盧대통령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함께했다. 그는 "대통령의 특정 시민단체에 대한 편파적인 행동은 나라가 양분되는 현상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어가자 법정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尹소장은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봉사함으로써 사회 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고 밝혔다.

"盧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알려준 소중한 학습의 기회가 됐다"는 법조계의 분석은 그래서 관심을 더 끈다. 이날 재판의 의미가 단순히 탄핵소추를 기각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헌재는 결정문 말미에 "대통령의 권위는 헌법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며, 헌법을 경시하는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로서 스스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재판 역시 여느 형사재판처럼 법의 엄정함과 포용력이 작용한 것이었다. 헌재의 당부처럼 이번 재판이 '권력'에는 겸손을 일깨워주고 국민에겐 법치주의의 근본을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재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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