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고문 "더러운 政爭" 발언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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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한국당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대선논의 자제지침에도 불구하고 대선후보들간에 묘한 신경전이 전개되는가 하면 후보 선출 경선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불붙을 조짐이다.
이회창(李會昌)고문의 27일 춘천발언이 신경전의 불을 댕겼다.그는“과거의 더러운 정치풍토는 더러운 정쟁(政爭)이라고까지 말할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정치적 검증을 받았다고 얘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도착적인 심리상태라고 할수 있다”고 말했다.
李고문측은 28일 발언의 진의가 와전됐다고 해명했으나 신한국당내 다른 대권후보측은 李고문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형우(崔炯佑)고문측은“과거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면 그때 李고문은 무엇을 했느냐”고 반문했다.
이한동(李漢東)고문측도“정치지도자는 오랫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야당은 자기방어를 위한 이회창 흠집내기에다 여당내 분란을 부추기는 이중전술의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생명을 걸고 민주화투쟁을 해온 인사에 대한 모독”이라며.더러운 정쟁'이 김대중(金大中)총재에게 비화하는 것을 일단 차단했다.
그리고 鄭대변인은“80년 신군부의 민주주의 압살에 협력해 대법관에 올랐고,6공 출범 초기에도 협력해 민화위위원에 발탁,그것을 발판으로 선관위원장에 오르는등 군사정권하에서 출세가도를 달린 인물”이라며 李고문에 인신공격의 직격탄을 퍼 부었다.
자민련의 이규양(李圭陽)부대변인은“李고문이 기존정치권은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김심(金心)의 영향력은 인정했다고 한다”고 전제,“그도(李고문)이제 대쪽이 아니라 천안 삼거리의 수양버들이다된 모양”이라고 비아냥댔다.李고문측은 당내 파 문이 예상밖으로 커지자.더러운 정쟁'의 대상이 야당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몇가지 노림수를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李고문의 발언이 아니라도 기성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그것을 자극함으로써 李고문은 여야의 잠재적 경쟁자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려 했던 것같다.
이는 또 야당 일각의 자신에 대한 흠집내기에 대해 기성정치에신물나 있는 국민적 정서를 자극함으로써 적극 공세를 펴겠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다음으로 당내 경선방식을 둘러싼 영입후보군과 기성후보군간의 물밑 신경전에서 자신의 분명한 색깔을 드러낼 필요성을 느꼈다고보인다.그는 완전 실질경선을 주장했다.
이는 당내파들과는 입장이 다르다.李고문등 영입파들은 현행규정이 불합리하다며 개정을 요구하는 반면 민주.민정계등 기득권자들은 현행 고수로 맞서왔다.
특히 영입파중 박찬종(朴燦鍾)고문같은 이는“현행 경선제도는 불합리하다.8개 시.도에서 대의원 50명이상씩의 추천을 얻어야한다면 몇명이나 후보로 나갈 수 있느냐”며 개선을 주장했다.
朴고문은“내년에 모든 대의원을 1대1로 만날 것이며 내가 그들을 다 만나기전에 전당대회 날짜를 잡으면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의원 확보면에서 튼튼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당내파의 최형우(崔炯佑)고문은“경선은 현행 당헌과 당규에 명시된대로 하면 된다”고 못박았다.
다만 경선보다는 대통령의 지지가능성에 보다 기대하고 있는 이홍구(李洪九)대표는“차기후보는 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선절차에 의해 선출될 것”이라는 정도로 언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내 기반은 약하지만 국민적 지지에서 앞서가고 있는 李고문이 당내 기반 취약성을 극복하면서 국민적 지지기반을넓혀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으로 당내에선 분석하고 있다.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선보이는 방법이다.
이회창고문 발언 파문과 경선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사실상 대선전초전을 알린 셈이다.
정기국회가 끝나고 연말.연시를 맞으며 이처럼 치고받는 양상이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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