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MF 돈은 쓸 생각 전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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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이 제2의 외환보유액을 700억 달러 가까이 확보했다. 실제 외환보유액 2397억 달러 외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져다 쓸 수 있는 외화 마이너스통장을 만든 것이다. 모두 원화를 주고 달러 또는 엔화나 위안화를 가져오는 통화 스와프 방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한국은행이 30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에 합의한 데 이어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날 단기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IMF에 낸 분담금의 최대 다섯 배까지 달러를 인출할 수 있는 내용이다. 44억 달러의 분담금을 낸 한국은 220억 달러를 보장받았다.

여기에 기존 한·일 간에 체결한 통화 스와프가 130억 달러다. 이 중 100억 달러는 엔화로 받을 수 있다. 한·중 간에도 40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가 체결돼 있다. 전액 위안화로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 돈을 모두 끌어다 쓸 생각은 없다. 지금의 외환보유액으로도 시장의 달러 가뭄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다국적 비상금’은 외국 투자자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투기세력을 막는 방어막으로도 쓸 수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이런 국제 공조로 국내시장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과 체결한 통화 스와프를 가이드라인 삼아 중국·일본과 통화 스와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시아 전체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도 한·중·일 간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한·중·일이 통화 스와프 규모를 확대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와도 공조를 넓히는 방향으로 국제 공조를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IMF로부터 220억 달러를 보장받았음에도 단기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뜻은 없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의 구제금융과는 다르다. 구제금융은 달러를 지원하는 대가로 긴축이나 금리인상과 같은 정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새로운 프로그램은 잠시 달러 가뭄에 시달리는 나라에 조건 없이 해당 통화를 받고 달러를 주는 방식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굳이 달러가 더 필요하지 않은 데다 외환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픔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IMF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소식만 퍼져도 심각한 위기에 빠진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 29일 한국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거짓 소문이 퍼지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강 장관은 “한국 사람들의 IMF 지원에 대한 정서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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