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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돈] 4. 문학 : 작가정신도 곳간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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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최근 몇년간 국내 소설은 외국 소설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교보문고의 문학분야 베스트 셀러 판매대도 외국 소설 일색이다. [최정동 기자]

'2003년 소설 분야의 특징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이 베스트셀러 차트의 주종을 이룬다는 점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국내 소설 분야의 계속되는 정체와 불황 때문이다. 상위 20위권에 진입한 책 중에서 '느낌표'의 추천도서를 제외하면 국내 작가의 작품은 단 한권도 없다.' 교보문고가 지난해 도서 판매 동향과 연간 베스트셀러를 분석해 소설 분야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외국 소설의 등등한 기세에 눌려 국내 소설은 말 그대로 고사(枯死) 직전이다.

국내 소설, 나아가 문학의 위기가 일시적인 현상인지 대세로 자리잡았는지가 궁금해 좀더 알아보았다. 결과는 불길했다.

1989년, 94년, 99년,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 20위의 목록을 뽑아봤더니 국내 소설의 비중은 12종, 11종, 12종으로 외국 소설에 대해 근소한 우위를 지켜 오다 올 들어 7종으로 크게 줄었다.

*** "시집 1500부 내고 수입 0"

부실의 '내용'이 더 문제였다. 올해 1~4위는 외국 소설이었고, 혼자서 3종을 20위 안에 올린 작가 김훈씨를 빼고 나면 20위 안에 든 국내 작가는 4명에 불과했다.

판매 위축은 작가의 호주머니를 쪼그라들게 한다. 단군 이래 소설가와 시인들의 지갑이 두둑한 적은 없다지만, 익명을 조건으로 털어놓은 여시인 A씨(47)의 사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지난해 세번째 시집을 낸 문단 중진 A씨는 "시가 돈이 되느냐"는 질문에 "시 쓰기와 돈은 별개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A씨가 추산한 지난해 시를 써서 번 돈은 40만~50만원. 그나마 시 한편에 2만원에서 10만원까지 문예지에 따라 중구난방인 원고료로 받은 돈일 뿐이다.

시집은 한권도 팔리지 않았다는 얘기일까. A씨는 "초판 1000부를 모두 소화하고 최근 재판 500부를 찍었지만 인세 수입은 없다"고 말했다. 문단 내 예의상 선.후배, 동료 시인들에게 보내 줄 시집 200권 구입 비용을 인세에서 제하다 보니 자신에게는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가 밥 먹여 주지 못하다 보니 A씨의 경우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하는 편이다. 그는 "잡지 교정.단행본 윤문.사보 글쓰기는 물론 다큐멘터리 단행본을 대필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소설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폐간된 계간 문예지 '문학인'의 지난해 봄호는 김연수(34).이응준(34).김종광(33).윤성희(31)씨 등 소위 '잘나가는' 젊은 작가 네명이 2002년 12월 말 진행한 방담을 실었다. 익명으로 게재된 방담에서 두명은 소설을 써서 한 해 동안 번 돈이 300만원뿐이라고 대답했다. 그 중 한명은 "누가 밖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했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오후에 원고료 안들어오면 못나간다'고 말했다"는 사연을 소개했다.

*** 국내 문학 갈수록 위축

문학동네 강태형 사장은 "요즘 소설은 2만~3만부만 팔려도 10년 전 10만부 팔았을 때만큼 흐뭇하다"며 "전업 작가들이 안쓰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강사장은 "소설만으로 먹고 살려면 3만부 정도 팔리는 소설을 매년 한권씩은 써야 연수입 3000만원 정도를 올릴 수 있는데 요즘 그런 작가는 황석영.이문열.조정래.박완서.김주영.신경숙.은희경.성석제.공지영씨 정도"라며 "문학판은 부익부는 없고 빈익빈만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80~90년대 문학시장이 너무 뜨거웠다고 분석한다. 외국의 상황을 보더라도 요즘의 위축된 문학 시장이 오히려 '적정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들의 궁핍이 상상력의 궁핍, 나아가 문학정신의 좌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훨씬 높다.

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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