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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스타 추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학을 졸업한 뒤 만화가로 활약하던 게리 쿠퍼가 영화계에 데뷔한 것은 24세 때인 1925년이었다.장신(長身)에 미남이었으나.특징이 없다'는 이유로 5년이상 엑스트라로 전전하던 그를스타덤에 올라서게 한 영화는.모로코'와.무기여 잘 있거라'였다..게리 쿠퍼 팬클럽'이 구성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35년.디즈씨 시내에 가다'라는 영화에서 훌륭한 정치적 입장을 보여준 연기로 마침내 인기가 정상에 올랐을 때 그의 팬클럽은 그를 대통령후보에 옹립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재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해유권자들은 매우 비판적이었다.결과적으론 압도적 승리를 거둬 재선되기는 했지만 뉴딜정책을 비롯한 일련의 정책들은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던 것이다.팬클럽 회원들은 말 할 것도 없고,수많은 유권자들이 게리 쿠퍼의 출마를 원했지만 막상 당사자의반응은 무덤덤했다.“나를 영화속의 주인공.디즈씨'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출마했더라도 꼭 당선됐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의거절은 당연했다.영화속에서 대통령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해서 실제의 대통령역할까지 훌륭하게 해내리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은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의 참모습을 보기보다 그의역할을 더 중시한다.연예나 스포츠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스타'들을 우상(偶像)으로 삼거나,심지어 반신화(半神化)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그 까닭이다.
문제는 대중의.스타 우상화'에 대해 스타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달려있다.스타 자신이 스스로를 우상화 혹은 신격화하려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대중이야 어떻게 보든 그 무대를 떠나면 결국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지 않겠는가.게리 쿠퍼가 영원한 명배우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을 누구보다 잘 인식했기때문이었다.
“스타의 신성(神性)은 일시적인 것이며,시간이 그것을 침식한다”는 원리를 우리 스타들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타로 불리기시작한 이후의 처신이 더욱 중요하다.허재.신은경 등의 사건은.
진정한 스타'의 부재(不在)를 뜻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 짝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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