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가 살리기 미국이 앞장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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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소로스펀드 회장)가 미국 등 선진국들이 최근 신흥시장 국가의 ‘부도 도미노’를 막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선진국들이 자국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선 전력을 기울이면서도 주변국들의 운명에는 큰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로스는 신흥국가들이 연쇄적으로 위기에 빠진 데는 선진국들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또 다른 금융기관이 파산하지 않도록 지원하고 예금 보장을 확대하는 긴급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이 각자 자기 살기에 바빠 취한 이 조치들이 주변국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설명이다.

그는 “보다 안전한 곳을 찾는 자금이 신흥시장을 떠나 중심부로 돌아오면서 신흥국 통화 가치는 추락했고 주식시장은 무너졌다”고 말했다. 멈춘 심장을 다시 살려 내기 위해 피를 중심부로만 쏠리게 하다 보니 주변부가 괴사하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부랴부랴 우크라이나·헝가리 등 부도 위기 국가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섰지만 “그 정도론 역부족”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현재 IMF는 각 국가가 출연한 기금의 다섯 배까지 대출해 주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경우 2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브라질이 얻을 수 있는 돈은 15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대안으로 선진국들과 신흥국가 간의 통화 교환(스와프)을 제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신흥국가들의 통화를 달러와 바꿔 보유해 줌으로써 심각한 외환 부족 사태를 풀어 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중국·일본·아부다비·사우디아라비아 등 달러를 두둑이 지닌 국가들도 보완용으로 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세계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재정 상태가 건전한 국가들에 장단기 자금을 빌려 줘 이들 국가가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촉구했다.

소로스는 다음달 15일의 G20 회담을 중요한 고비로 지적했다. 그는 “금융위기의 태풍이 미국에서 시작된 만큼 신흥국 구제에도 미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미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썼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음 대통령이라도 나서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때가 되면 세계 경제의 손실은 훨씬 커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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