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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다른 주까지 가 오바마 지지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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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때이른 추위가 매섭던 2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시카고 남쪽 교외 켄우드의 인적 없는 그린우드가. 나무 사이로 보이는 벽돌색 2층 집 앞에 경찰차들과 검은색 밴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미 대선에서 앞서가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자택이었다.

길 건너 한인이 운영하는 잡화점 ‘바이킹’의 쇼윈도엔 오바마 지지 티셔츠·모자 등이 진열돼 있었다. 주인 김모씨는 “오바마 지지 티셔츠 등은 들여온 지 몇 주 만에 40~50개가 팔린 최고 인기 상품”이라고 귀띔했다. 이곳에서 타오르는 오바마 열기를 단박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 지역은 백인 15%에 흑인 인구가 75%에 이르는 유색인종 동네. 지난해 4월엔 얼굴이 널리 알려진 일리노이주 첫 여성 상원의원 캐럴 모슬리-브라운이 강도를 만나 손목이 부러졌을 정도로 악명 높은 우범지대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1996년 이곳에서 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줄곧 이곳을 떠나지 않고 정치력을 길러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8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인근 체스터의 와이드너대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청바지와 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오바마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우산이나 모자를 쓰지 않고 연설했다. 이날 악천후로 공화당의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와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는 예정됐던 필라델피아 유세를 취소했다. [체스터 AP=연합뉴스]

태어난 건 하와이지만 여기가 그를 대통령 후보로 길러준 정치적 고향이다. 실제로 오바마의 집으로부터 5분 거리엔 지금도 그가 다닌다는 단골 이발소와 그의 가족이 애용하는 한국인 세탁소가 있다.

또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와 시카코 최초의 흑인시장 헤럴드 워싱턴이 자주 찾았다는 인근 식당 ‘발라스’에는 자필 사인이 들어간 오바마의 사진이 걸려 있다. 10년 넘게 살아온 오바마 가족의 숨결이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흑인들은 선거 얘기가 나오면 하나같이 얼굴이 밝아졌다. 거리에서 만난 시카고 컬럼비아 칼리지 학생 티모시 고든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생각에 이 지역 주민, 특히 흑인들이 흥분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이번 선거로 인해 흑인들도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기분”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오바마 열기는 전례 없는 풀뿌리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바마를 배출했던 시카고 13지역구의 민주당 측은 “자발적으로 오바마 선거운동에 뛰어드는 주민들이 매주 500여 명에 달한다”며 “특히 흑인들의 수가 많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자들은 자기 돈으로 오하이오·인디애나 등 인근 주로 달려가 주택가 현관을 두드리며 오바마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등장으로 그동안 정치를 외면했던 이 지역 흑인 유권자들도 본격적으로 투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실시된 이 지역 부재자 투표에서 오바마를 위해 난생처음 선거해본 50~60대 흑인 유권자들이 쏟아졌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얘기다.

이런 열기는 켄우드 흑인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카고, 나아가 일리노이주 전체가 오바마의 당선 가능성으로 들뜬 분위기다. 시카고의 대표적 관광지인 ‘네이비 피어’의 기념품 가게에 들어서자 통로 한가운데에 오바마 전신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균형을 맞추려는지 존 매케인 사진도 없진 않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진열대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오바마 캠프에서 당선 확정 후 축하행사를 열겠다는 곳도 시카고 중심부에 자리 잡은 그랜트 파크다. 이 공원 한 쪽엔 벌써 흰색 대형 천막이 세워지고 있었다. 선거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시카고에선 오바마 당선을 기정사실로 보고 이미 축제 분위기에 돌입하고 있었다.

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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