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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금융위기는 거짓과 기만에서 비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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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람들에게 종교를 믿도록 설득하는 건 옳지 않다. 누군가 당신에게 와서 요청할 때 가르치는 것이다. 이게 불교의 전통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9일 구본일(56) BTN불교TV 사장이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73)를 만났다. 그리고 한 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다. 무섭게 몰아치는 세계 금융위기와 티베트의 자치권 문제, 최근 한국에서 불거진 종교편향 논란, 집착과 분노를 오가는 인간의 감정, 그 속에서 허덕이는 21세기 지구촌 사람들을 향해 달라이 라마는 ‘해법’을 던졌다.

-건강은 어떤가.

“며칠 전 담석 치료를 받았다. 이젠 완전히 회복됐다. 피곤하지 않다. 관심과 배려에 감사 드린다.”

-처음 만났는데 낯설지가 않다.

“저도 그렇다. 친숙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몸을 갖고,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언어도 다르고, 문화적 배경도 다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는 똑같다. 당신의 감정과 나의 감정, 당신의 욕망과 나의 욕망이 똑같은 거다.”

-전 지구촌이 금융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다들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최근 미국 금융사태의 원인을 보라. 그게 어디서 왔나.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기만한데서 왔다. 그 결과가 이런 재앙을 가져왔다. 그래서 정보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진실해야 한다. 정확해야 한다. 명확해야 한다. 정보는 그렇게 대중에게 전달돼야 한다.”

-좀 더 말해달라.

“현대 사회에서 정보와 미디어의 역할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마음에는 모든 잠재력이 담겨 있다. 그 잠재력을 여는 열쇠가 바로 ‘정보’다. 정보 없이, 또 지식 없이 그 잠재력은 활동으로 이어질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진실한 정보, 더욱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가끔 이런 농담을 던진다고 했다. “미디어 종사자들은 코끼리처럼 큰 코를 가져, 모든 냄새를 맡아야 한다. 사람들은 좋은 말,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한다. 그런데 미디어는 그 뒤에 있는 냄새까지 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미디어뿐만 아니다. 종교인이든, 정치인이든, 사업가든 마찬가지다.”

-지구촌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뭔가.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많은 문제가 있다. 자연적 재앙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간들이 만든 문제다. 그런데 60억 인류는 누구도 이런 문제를 원치 않는다. 모두가 평화로운 삶,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런데 왜 이런 문제가 생겼나. 우리의 ‘감정(Emotion)’ 때문이다. 이제는 때가 왔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정말로 심각하게 되짚어볼 때가 왔다.”

달라이 라마는 “지나친 긍정은 ‘집착’을 낳고, 지나친 부정은 ‘분노와 증오’를 낳는다. 세상의 상호의존성을 이해할 때 우리는 전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BTN불교TV 제공]


-감정이라면.

“지금껏 우리는 몸과 외형적인 가치를 중시했다. 대신 감정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며 우리의 내면적인 가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세계의 주요 종교는 모두 우리의 내면을 도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종교들처럼 불교가 때로는 예식과 형식을 중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말끝에 달라이 라마는 “허허허”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형식’을 통해선 결코 붓다를 만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불교의 본질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무엇이 감정을 변화시키나.

“무한한 이타심이다. 우리는 그걸 ‘보디치타(Bodhichitta·보리심)’라고 부른다. 이건 매우 매우 중요하다. 다른 종교도 사랑, 자비심, 따뜻한 마음, 용서하는 마음 등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있다.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 원인과 결과,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적 시각의 핵심은 ‘모든 것은 서로 기대고 있다’가 된다.”

-이런 시각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나.

“이런 시각은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게끔 한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을 보라. 어떤 감정은 너무 파괴적(Destructive)이고, 어떤 감정은 너무 건설적(Constructive)이다. 세상은 서로 의존하며 연결돼 있다. 그런데 그중 하나만 골라서 너무 긍정적으로 보면 ‘집착’이 생기고, 그중 하나만 골라 너무 부정적으로 보면 ‘분노와 증오’가 생긴다. 넓은 관점으로 전체를 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더욱더 현실적(Realistic)으로 살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하나의 상황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개의 상황이 맞물려 빚어낸 결과다. 그걸 봐야 한다. 그래야 가족 문제든, 사회 문제든, 국가 문제든, 지구적인 문제든 보다 현실적으로, 보다 실용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어서 달라이 라마는 불교의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이라고 했다. “이 말은 한국 불자, 중국 불자, 일본 불자, 스리랑카 불자 등 모두에게 친숙한 개념이다. 『반야바라밀다심경』에도 ‘상호의존성’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달라이 라마는 틈날 때마다 불자들에게 말하다고 했다. “여러분은 부디스트다. 불교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인간의 지성을 최대한 활용, 감정을 전환하는 데 있다. 불안정한 감정을 아주 평화롭고, 아주 고요한 감정으로 말이다. 그래서 마음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지난 3월, 티베트 유혈 사태가 있었다. 어찌 보는가.

“첫째, 티베트 이슈는 단지 도덕적인 이슈였다. 둘째,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던 말이다. 왜냐면 티베트는 물질적으로 뒤떨어졌기(Materially backward) 때문이다. 그래서 자원 개발에 있어선 중국 안에 남는 것이 더 이익이 될 것이다. 수십 년간의 우리의 투쟁이 어느 한쪽의 승리나 패배를 가져오진 않았다. 양쪽 모두 덕을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라이 라마는 11월에 티베트에서 망명정부 특별총회가 열린다고 했다. “이번 달에 결심했다. 이건 티베트 사람들의 투쟁이고, 티베트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궁극적으로 티베트 사람들의 문제다. 그래서 지난 사태와 책임, 모두를 티베트 사람들에게 건네주려고 한다. 11월에 있을 예정인 큰 회의(망명정부 특별총회)에서 티베트 사람들에게 좀 더 책임감을 가지라고 얘기할 생각이다.”

한편 홍콩의 밍(明)보는 27일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 포기, 자치 쟁취’라는 중도노선을 폐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17일부터 닷새간 열리는 특별총회에서 달라이 라마가 대중국 노선을 어떻게 취할 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한국에선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정부 차원에서 공직자들은 인도 정부처럼 비종교적이어야 한다. 인도에는 힌두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적 전통이 있다. 아주 작은 공동체인 조로아스터교는 이 거대한 나라에서 수천 년 동안 그들의 정신과 문화를 지켜오고 있다. 그들이 존재했기에 인도 정부는 비종교적일 수 있었다. 인도는 정부차원에서 모든 종교와 전통을 동등하게 존중한다. 우리도 다른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 나도 서양에 가선 ‘불교는 당신들의 종교가 아니므로 기독교 전통을 지키는 것이 더 편안하다’고 말한다. 왜냐면 그들의 전반적인 역사와 문화, 문명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선 종교로 인한 싸움도 많았다.

“그건 과거의 역사다. 과거에는 종교가 고립돼 있었다. 그때는 나의 종교, 우리의 종교를 구분해서 싸우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생각과 태도를 가진다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그건 서로를 파괴하는 일이다. 이젠 글로벌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행복한 사회의 주춧돌은 뭔가.

“정직과 진실성,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다. 종교에 관한 얘길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상식’을 말하는 거다. 우리는 자비심 있고, 정직한 사람에게 믿음이 간다.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 자격을 갖춘 사람도 거짓말을 하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건 행복한 인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상식이다.” 31일 오후 11시 BTN불교TV 방영, 11월 1일 오전 8시30분 재방영.

정리=백성호 기자

◆달라이 라마=1935년생. 본명은 텐진 갸초. 5살 때 제14대 달라이 라마에 추대됐다. 59년 티베트 소요사태에 대한 중국의 무력 진압을 계기로 인도로 망명했다. 이후 티베트 독립을 위해 활동하다 80년대 후반부터 자치권 확보로 목표를 수정했다. 8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대표적 종파인 거루파의 수장을 ‘달라이 라마’라고 한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바다’를,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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