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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 입고 구르고 달리고 … “멋쟁이 007은 잊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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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007 제임스 본드가 달라졌다. 턱시도를 빼 입고 마티니를 즐기며 첨단장비와 화려한 로맨스를 자랑하던 007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새로운 007은 속된 말로 개발에 땀나도록 달리고 구른다. 거칠고 위험한 액션을 직접 소화하느라 명품 정장을 입고도 땀투성이가 되기 일쑤다.

다음달 5일 개봉하는 007시리즈의 최신작(제22탄) ‘퀀텀 오브 솔러스’는 시리즈의 일대 변신을 선언한 전편(2006년 ‘카지노 로얄’)의 컨셉트와 줄거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시간 뒤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전편에서 연인 베스퍼의 배신과 죽음으로 큰 상처를 받고 복수심에 불타는 본드가 응징에 나선다. 사건의 배후 인물인 사업가 도미니크 그린(마티유 아말릭)과의 대결이 주요 줄거리다. 이런 식의 직접적인 속편은 007시리즈에서 처음이다.

또다시 본드 역을 맡은 대니얼 크레이그. 다음달 5일 국내 개봉하는 ‘퀀텀 오브 솔러스’의 한 장면이다. [소니픽처스 제공]

전편에 이어 007의 변화를 상징하는 주연배우 대니얼 크레이그(40·사진)를 007의 고향,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 액션 촬영의 후유증으로 최근 오른쪽 어깨를 수술한 터라 그는 왼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가능한 한 액션을 직접 소화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감성적이고 극적인 장면은 배우가 연기하고 액션은 다른 얼굴, 즉 스턴트맨이 한다? 그보다는 배우가 직접 하는 게 관객들의 마음을 살 거라고 봤다. 영화적 전통이 있지 않나. (몸으로 직접 코미디 액션을 연기했던)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처럼.”

그의 외모는 숀 코너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등 매끈한 미남형의 선배 007들과 사뭇 다르다. ‘카지노 로얄’의 캐스팅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007팬의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몸짱보다 연기파로 분류되던 그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 리얼액션으로 이를 돌파했다. ‘카지노 로얄’의 성공으로 안티 대신 파파라치에 시달리는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났다. 과거의 안티 여론에 대해 그는 “내가 일일이 답할 일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영화의 액션에는 ‘본 얼티메이텀’의 촬영팀이 합류했다. 리얼액션이라는 공통점에 더해 본 시리즈의 영향을 가늠케 하는 요소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주인공은 이름도 비슷하다. “우리가 영향 받은 것은 제이슨 본(본 시리즈 주인공) 영화가 아니라 제임스 본드 영화(즉 007시리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크레이그는 두 영화의 유사성보다는 단연 007시리즈의 전통을 강조했다. “본 시리즈는 리얼리티가 바탕이지만, 007시리즈는 일종의 판타지다. 비밀요원이 빼어나게 차려 입고 나오는 게 판타지 아닌가.”

판타지로서 이번 영화가 007시리즈의 전통을 확대·계승한 또 다른 면은 화려한 로케이션이다. 고풍스러운 이탈리아 도시 시에나의 전통 경마,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토스카’ 공연 같은 유럽의 아취에 더해 천연자원과 정권 탈취를 둘러싼 음모가 벌어지는 볼리비아의 사막과 해변 등 전세계를 누빈다.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는 역대 007시리즈 중 최고다. “누가 알겠나.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영화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는 “설령 5000달러짜리 저예산영화라도 007시리즈를 더 하고 싶다”는 말로 애정을 담뿍 표현했다.

사족으로, 그는 ‘카지노 로얄’의 일화를 들려줬다. 수영복 차림으로 탄탄한 상반신을 과시한 장면을 두고 “우연히 촬영된 것”이라고 했다. “본래 헤엄쳐서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었는데 수심이 무릎밖에 안 돼 일어섰을 뿐”이란 얘기다. 이번 영화에는 그런 방식으로 007다움을 인정받으려는 장면은 없다. 그는 이미 두말할 나위가 없는 새로운 007이니까.

런던=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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