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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승부처를 가다 ② 플로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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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3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존 F 케네디 도서관에 마련된 조기투표장 입구. 대선일(11월 4일)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투표하러 나선 유권자 80여 명이 길게 줄 서 있었다. 40대 이상이 다수였지만 20대의 젊은 층도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여대생 제니퍼 힐(21)에게 “누굴 찍을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주저하지 않고 “버락 오바마(민주당 대통령 후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학에선 ‘조기 투표의 힘으로 미국을 바꾸자’는 민주당의 독려가 먹히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조금 뒷줄에 있던 릭 데이비스(59·주유소 경영)란 남성은 “존 매케인(공화당 대통령 후보)”이라며 “오바마가 집권하면 세금이 올라가고, 재정 지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플로리다는 미국에서 넷째로 큰 주다. 대통령 선거인단(전체 538명)도 넷째(27명)로 많다. 2000년 대선 승부는 이곳에서 갈렸다. 당시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는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게 전국에서 54만 표를 지고서도 플로리다에서 법적 분쟁 끝에 537표 차이로 신승한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 부시는 2004년 대선 때도 이곳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5%포인트 차이로 꺾었다. 지난달 초만 해도 플로리다는 다시 공화당을 밀어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승부를 점치기 어려운 최대 격전지로 바뀌었다.

오바마는 이곳에 어느 주보다도 많은 돈(4000만 달러)을 뿌렸다. 그가 16∼23일 TV광고에 쓴 돈은 420만 달러다. 매케인은 같은 기간 100만 달러를 지출했다. 오바마 진영은 지난달 1일부터 10월 22일까지 플로리다에서 26차례 유세했다. 같은 기간 매케인 측의 유세는 16번이었다. 오바마의 마이애미 선거 사무소에서 자원봉사하는 수전 브래드셔(43)는 “오바마가 오하이오(20명) 등 다른 경합지역을 잃어도 플로리다에서만 이기면 게임이 끝난다는 게 우리 판단이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2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키스미에서 열린 유세에서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환호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대선의 승부처인 플로리다에 공을 들여 왔다. [키스미 AP=연합뉴스]


오바마가 플로리다에 집중하는 동안 경제위기는 심화됐다. 플로리다에선 관광과 건축경기가 죽었다. 실업자가 어느 주보다도 많이 나왔고, 주택 압류는 전국 2위를 기록했다. 여론조사가 전공인 다리오 모레노 플로리다 인터내셔널대 교수는 “경제위기로 이곳 민심이 바뀌었으며 공화당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21일 오후 마이애미 바이센테니얼 파크에서 유세하면서 “부시는 탐욕스러운 월가를 규제하지 않았으며, 매케인은 그런 정책을 90% 이상 지지했다”고 비난했다. 유세장에 부인과 딸·사위를 데리고 나온 세브라 코리(70)는 “오늘 3만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며 “지난달 초엔 상상할 수 없었던 군중이 집결한 건 공화당으론 미국을 재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매케인은 23일 플로리다 4번 고속도로(I-4) 벨트를 돌면서 “오바마의 세금정책은 (소기업의)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한 ‘배관공 조(Joe the Plumber·오하이오 배관공 조 워젤바커)’ 얘기를 수없이 꺼냈다. 그러면서 “부를 창출하지 않고 재분배하겠다는 오바마의 정책으론 경제를 못 살린다”고 비난했다. 마이애미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는 샤론 롱고바르드(61·여)는 “공화당 지지층이 위기의식으로 뭉치고 있다”며 “매케인이 2000년의 부시처럼 플로리다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마이애미(플로리다)=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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