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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大기자 통일7년 독일을 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에버하르트 라이스만.동독 출신.올해 56세의 기계공학박사.사변적(思辨的)이기로 유명한 독일사람이지만 큰 역사적인 사건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진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온 몸에서 정력이 솟는것 같고 동독 출신으로는 드물게 영어가 유창한사람. 그는 독일통일을 「뜻밖의 횡재」로 여긴다.그는 분단된 독일의 동쪽에서 계속 살았다면 한사람의 평범한 기술자로 기복(起伏)없는 일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은 그를,아직은 작지만 장래성이 있는 기계회사 사장자리에앉혔다.드레스덴 교외에 있는 제논이라는 이름의 그의 회사는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부속품을 만드는 기계를 생산한다.
직원수는 사장까지 합쳐 26명.지난해의 매출은 4백만마르크.
이익은 매출의 10%정도인데 해마다 20만마르크를 추가로 투자한다. 독일정부가 한.독포럼에 참가한 한국대표들에게 특히 제논방문을 주선한 것은 이 회사가 통일후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옛 동독지역에 생긴 무수히 많은 중소기업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있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제논은 1990년 라이스만과 동료 3명이 작센주(州)정부가 알선한 융자로 세웠다.지금도 연구개발비는 주정부의 지원을 받는다.공동창업자와 직원들은 모두 동독시절 큰 전자회사에서 일하다회사가 해체돼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다.그들은 모 두 원가계산의기초는 전혀 아는바 없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밖에 모르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하루 여덟시간씩 시장경제를 공부했어요.』 시장경제중에서도 라이스만과 그의 동료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마케팅과 회계였다고 한다.
그래서 라이스만은 그런 생소한 분야를 강의하는 은행과 상공회의소를 열심히 찾아다녔다.싱가포르와 방콕에서 열린 박람회에도 갔다.이제는 유럽 일대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임금수준은 서독쪽 같은 업종의 70~80%지만 직원들은불만이 없다.통일후 많은 동독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드레스덴에 계속 눌러앉아 옛 동료들과 함께일을 할 수 있다는 정신적인 보상(補償)이 그들에게 만족을 준다. 라이스만은 시장경제라는 무한경쟁의 세계에 뛰어들어 보니 동독체제의 붕괴는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념의 열세(劣勢)가 아니라 동독경제의 비효율 때문입니다.
동독 전체의 하루 자동차 생산량이 폴크스바겐의 하루 생산량인 4만대였으니까 말입니다.』 동독지역에는 벌써 통일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조사결과가 전세계의 매스컴을 타고 있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본에서 열린 한.독포럼에서도 독일측의 주제발표자들은 당초의 예상을 훨씬 초과하는 통일비용과 통일후유증에 관한 암 울한 숫자들을 나열했다.도이체방크(은행)의 부총재 라이너 파이트는 독일의 국경선이 동쪽으로 2천㎞ 이동한 것이 통일의 유일한 성과라고 주장했다.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서독사람의 절반과 동독사람의 38%가 통일에 불만을 갖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통일 자체가 잘못된 것이어서가 아니라 통일이 자유와 빵을 동시에 해결해 줄것이라는 기대가 너무 컸던데서 오는 실망이요 환멸일 뿐이다.
특히 서독사람들의 반감을 산것은 콜총리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어기고 7.5%의 통일세를 부과한 것이다.
지금 동독지역의 임금은 서독지역의 81% 정도인데 생산성은 55% 수준이다.그리고 슈피겔은 11월4일자 통독특집에서 옛 동독인의 4분의 3이 동독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동독인들은 자유보다 평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통일된 독일의새로운 환경에서 문화충격을 받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했다. 라이스만사장은 뭐라고 하는가.『벌써 기운이 빠진 사람들이 있는건 사실입니다.그러나 통일은 잘된 일입니다.자유경쟁체제에서는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죠.』이것이 라이스만 한사람만의 낙관론이 아니라는 것을 동독 중심도시의 하나인 라이프치히에서 확인했다.
리아프치히는 89년 여름부터 시민들이 니콜라이교회에 모여 통일기도를 하고,토론을 하고 급기야는 거리로 뛰어나가 데모를 한독일통일의 발상지나 다름없는 도시다.인구 50만의 라이프치히는도시 전체가 온통 3공때의 한국같이 「건설의 굉음」으로 흔들리고 있다.중앙역은 유럽 최대의 중심역이 된다는 야망을 갖고 대대적인 확장과 개축공사를 하고 있다.
유명한 게반트하우스와 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하는 광장 일대는호텔과 미국식 상점으로 벌써 건조하고 잿빛이던 옛 동독의 면모를 잃어가고 있다.
라이프치히대학의 언론학교수 아르눌프 쿠치박사는 이런 현상을 「여명기의 흥분」이라고 흥분했다.
괴테의 『파우스트』 일부 무대가 된 지하술집들과 이 도시 유일한 한국식당인 「레스토랑 킴」을 포함한 식당들은 가는 곳마다손님들로 가득찼다.「레스토랑 킴」의 젊은 웨이터는 동독시절과 비교해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훨씬 좋아졌다고 대답했다.
동독출신들은 난치병(難治病) 수술에 성공한 회복기의 환자들 같다.회복에 시간이 걸리는데 빨리 병실을 박차고 나가 성한 사람들같이 살고싶어 한다.
독일정부는 동독지역의 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 해마다 1천억달러를 동독지역에 쏟아부었다.독일판 마셜플랜이다.
지금 동독지역에서 뛰는 수만명의 라이스만들은 서독과의 비교에서 생산성을 89년의 3분의 1수준에서 2000년에는 80%까지 끌어올린다고 한다.
독일정부는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날이 그립다고 말하는 일부 동독지역 사람들의 좌절감과 통일비용에 비명을 지르는서독지역 사람들이 겪는 불편을 대외적으로 적절히 활용해 독일은심각한 통일의 후유증으로 강대국 역할을 할 형 편이 아니라는 의도적 저자세를 취한다.
독일은 지금 유럽 최강국의 길을 가고 있는데 아직은 주변나라들이 독일의 급성장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부시 대통령은 처음부터 독일통일을 지지했다.그러나 유대계가 주류를 이루는 언론은 독일통일에 대해 줄기차게 경계론을 폈다.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해 독일에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들이 독일통일을 투표로 결정하자는 주장까지 나왔 다.미국의 주요 언론으로는 뉴스위크가 지난 11월13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장장 7년만에 처음으로 독일통일은 잘된 일이라고 찬양했다. ***강대국 견제 의식 .엄살' 우리는 독일통일비용과 후유증이 강조되는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비용이 엄청나다고 「되어지는 통일」을 막을 수 있는가.비용이 적다고 통일의 시기를 우리 뜻대로 앞당길 수 있는가.
독일이 골몰하고 있는 것은 물리적 통일 뒤의 화학적 통합의 기간을 줄이는 방도를 찾는 것이다.통일후 동.서독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평등의 상대적인 비중이 다르고 그래서 동독지역 사람들은 문화충격을 느낀다.동구에서 가장 잘 살던 동독.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가 돼버린 북한.독일의 절반정도의 분단.한반도의 완전분단과 북한의 완전고립.이런 대조를 생각하면통독 7년의 체험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라이프치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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