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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스타일리스트>'가슴,시각 개발연구소' 최정화 소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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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카페의 주방에서 탄생했다.대학을 졸업하고 74년부터 재즈카페 「피터캣」을 운영하던 무라카미는 나이 서른이 넘기 전에 뭔가 해야겠다는 막연한 조바심 때문에 문을 닫은 카페에 혼자 남아 이 작품을 썼다.
이런 태생적 배경 때문인지 그의 문학에서 카페라는 공간은 각별한 의미를 띠고 있다.
무라카미의 영향을 받은 90년대 한국의 신세대문학에서도 카페는 유사한 공간으로 나타난다.윤대녕의 단편 『은어낚시 통신』엔문화적 소비취향이 비슷한 인물들이 비밀 모임을 갖고 쾌락을 탐닉하는 카페가 나오고,장정일의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는 극단적 자유주의를 설파하는 「재즈교회」가 카페에 세워진다.여기에모인 인물들을 묶어주는 것은 후기산업사회의 획일성과 물질주의에대한 냉소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혐오하는 물질의 안락함에 중독돼있어 고작 카페에 모여 목청을 높이고 자기파괴적인 쾌락으로 빠져드는 소아병적 저항만 할 수 있을 뿐이다.평론가 김윤식씨는 이런 인물들에서 90년대 젊음의 한 경향을 찾아 낸 신세대문학을 「카페문학」이라 이름 붙였다.
최정화(35)씨는 미술판에서 선구적으로 카페를 작업 대상으로삼은 사람중 한명이다.
87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최씨는 권위있는 공모전중 하나인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는등 화가의 길을 착실히 걸어가던 어느날 갑자기 화필을 던져버렸다.
공모전중 하나인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는등 화가의 길을 착실히 걸어가던 어느날 갑자기 화필을 던져버렸다.*** 그리고90년 이대앞의 록카페 「올로올로」를 시작으로 「오존」(종로3가),「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압구정동),「살」(동숭동)등의 카페를 만들었다.
『엄숙주의가 싫어졌고 체감할수 있는 공간에 내 표현을 해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보는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뭐같네」「뭔가 있는 것 같네」「그럴듯하네」등 세가지입니다.별느낌이 안 오는데 예술작품에 대해 뭔가 예의를 차려야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라는 느낌을 받았어 요.이런 곳에서예술적이라는 말을 듣기보다 술집에서 「거 참 분위기 죽이네」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만드는 카페는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연출하고 있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모두 한 공간에 두면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이질적 소재들을 모아 공존 가능성을 엿보는 것이다.「올로올로」는 거친 시멘트바닥에 제도용 탁자가 있고 천장에는 전봇대의 애자가 장식돼 있으며 음산한 불빛이 이들을 감싸고 있다.
압구정동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도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대명사인 지역에 정반대의 이미지를 구축했던 공간.사방을 철판으로두르고 의자와 탁자등 최소한의 장식만 갖춘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으나 『이 동네에서는 역시 통하지 않아 지금 은 「산타페」로 개명하고 장식도 바꿨다』고 한다.
***현재 최씨 의 공식직함은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소장」.
눈으로 봐서 즐거움을 주는 공간은 무엇이든 장식하는데 가슴으로한다는 뜻이라고 한다.카페.패션매장.갤러리 장식등 공간인테리어를 비롯해 문학잡지.전시회 도록.명함디자인등 그래픽작업과 각종퍼 포먼스,영화 『301.302』의 미술감독등 최씨의 작업은 일일이 열거할수 없을 정도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표현방식은 기성 미술계로부터 『예술이 아니라 고등사기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여기에 대해 그는『최정화적이면 된다』는 느긋함을 보인다.
***『생화는 일회용인데 조화는 오래간다.진정한 예술은 남겨지는 예술이 아니라 소비되는 순간의 진정 속에 있다.』최씨는 자신을 이 한마디로 요약한다.예술형식보다 사람이 좋고 영원에 의지하기보다 순간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그가 진정으로 얻고 싶은 것 은 자신의 작품을 일회용 제물로 삼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그는 「예술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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