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 詩에 애잔한 멜로디 여주인공 김혜수를 울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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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07면

영화 ‘모던보이’에서 독립운동가 조난실 역을 맡아 정미조씨의 ‘개여울’을 부르는 김혜수.

영화 ‘모던보이’(감독 정지우)에서 ‘개여울’을 처음 들은 이라면 한국 노래인지 일본 노래인지 헷갈릴 법하다. 같은 멜로디에 일본어 가사로 나와서다. 영화상에서 이 노래는 일본 여가수 이시다 요코의 곡이다. 그런데 실제로 노래를 부른 주인공은 ‘목소리 대역 가수’ 조난실(김혜수 분). 수백 수천 번 일본어로 불렀던 노래를, 술 취한 밤, 그녀는 연인 이해명(박해일 분) 앞에서 흐느끼듯 읊는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잃어버린 모국어 가사가 처음으로 전면에 흐른다.

영화 ‘모던보이’ 속의 ‘개여울’

영화에서 ‘개여울’은 애틋한 사랑의 세레나데이자 불운한 시대를 상징하는 엘레지다. 이 때문에 어떤 배경음악보다 선곡이 중요했다. 1930년대 분위기를 담아내면서 신분을 위장한 독립운동가 조난실을 상징할 곡이 필요했다. 이재진 음악감독은 일제시대의 희귀한 음원 자료는 물론 당시 대중가요에 관한 연구 논문까지 백방으로 뒤졌다. 적당한 가요를 못 찾아 ‘반달’ 등 동요까지 검토했지만, 마땅치 않았다. 대부분의 작사·작곡가가 친일파였던 까닭에 독립운동가 조난실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재진 음악감독은 30년대 민족시인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로 대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엄마야 누나야’ 등 여러 후보를 검토하던 중, 정미조가 70년대 부른 ‘개여울’을 접했다. 이 감독은 “우수에 젖은 멜로디가 경성시대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는 듯했다”며 “특히 노래를 부를 김혜수씨의 목소리 톤과도 잘 어울렸다”고 선곡 배경을 밝혔다. 정지우 감독을 통해 정미조의 ‘개여울’을 처음 들은 김혜수는 “이건 딱 조난실의 노래”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어 가사는 원곡 가사를 직역한 것이다. 김혜수는 한국과 일본에서 두루 활동하는 재즈 가수 웅산을 보컬 트레이너로 삼아 3개월간 두 가지 버전을 깔끔히 소화했다. 김혜수가 부른 두 가지 버전의 ‘개여울’을 포함한 디지털 싱글 네 곡이 영화 개봉 전 공개된 데 이어 배경음악 등 전곡이 담긴 영화음악 앨범도 최근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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