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책읽기Review] ‘독립운동가 이봉창’ 뒤집어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러시아 화가 세르게이 예브게이예프 토로레프가 그린 이봉창 초상화. [중앙포토]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 인간 이봉창 이야기
배경식 지음, 너머북스, 304쪽, 1만3000원

 기노시타 쇼조는 충실한 ‘황국신민’이 되고 싶었다. 누구보다 일본어에 능했고 그 덕에 조선인으로는 들어가기 힘든 직장에도 들어갔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자신이 조선인이기 보다 ‘신일본인’임을 강조했다. 천황의 얼굴을 봐야 진짜 일본인이 될 수 있단 생각에 도쿄에서 교토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옷차림에서 행동 거지까지 일본인과 흡사해 상하이 교포들은 그를 ‘왜영감’이라도 불렀다. 그런 그가 서른 살 되던 해 천황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육군 시관병식에 참석한 뒤 궁성으로 돌아가는 천황의 폭살을 시도한 것. 수류탄이 제대로 터지지 않아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9개월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기노시타 쇼조, 그가 바로 이봉창이다. 그 동안 그는 일제에 선친의 땅을 빼앗긴 뒤 가난과 차별, 폭정에 시달리다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투사라 하니 무언가 고결하고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을 거란 평이 무성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선입견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차라리 일제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근대 향락문화를 마음껏 소비하며 식민지 시대를 살아 간 ‘모던보이’가 이봉창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이봉창 신화에 대한 뒤집기는 일본 가기 전의 행적부터 시작한다. 이봉창이 간사로 일하며 항일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금정청년회’는 사실 일제의 정책에 협조적인 지역 유지 중심으로 조직된 온건 청년단체일 뿐이었다는 것. 조선총독부의 간이국세조사(인구센서스)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것 역시 일제의 식민정책에 협조했음을 알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된다. 특히 책에 소개된 20일간의 행적은 고결한 독립운동가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주로 술 마시고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고 마작을 했으며 밤에는 유곽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첨단이라 할 수 있는 골프도 즐겼다. 암살 과정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천황의 당일 행차코스, 탑승 마차도 미리 파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천황의 얼굴조차 몰랐다.

한 편의 ‘위인전’을 기대한 독자에게 이 책의 내용은 다소 불편할 수 있다. 논란의 여지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주인공의 미덕만 드러내는 기존 독립운동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봉창의 삶을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런 문제의식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게 저자의 변이다.

김필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