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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연덕춘옹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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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원 번호 1번, 나무 막대와 찢어질 듯한 헌 공으로 한국 골프를 개척한 선구자, 최경주가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에서 우승하기 60년 전에 국제대회 우승을 따내 한반도를 감격하게 했던 골프 영웅, 연덕춘(延德春)옹이 11일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경성골프구락부 캐디 마스터이던 삼촌 덕에 고인은 열일곱살 때부터 골프장에서 일하며 어깨너머로 골프를 배웠다. 천부적인 골프 기량을 선보인 고인은 1935년 일본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유학 3개월 만에 관동골프협회 프로 자격을 얻었고, 37년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8위에 올랐다. 41년에는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대회가 중단됐으며, 고인이 한국으로 가져온 우승컵도 현해탄을 건너지 못했다는 게 국내 원로 골퍼들의 증언이다. 우승컵은 한국전쟁 때 잃어버렸다고 한다.

50년대 중반 후배 프로골퍼들을 지도하면서도 56년 필리핀에서 열린 극동오픈골프선수권에 나갔다. 국제 골프대회에 출전한 한국선수 1호가 됐다. 브리티시오픈.월드컵골프에도 고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58년에는 국내 첫 대회인 한국프로골프선수권을 제패했다.

63년 친목단체인 '프로골프회'를 한단계 발전시킨 KPGA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으며 2대 회장직을 맡았다. KPGA가 시즌 최저타를 기록한 골퍼에게 주는 '덕춘상'은 고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문홍식 KPGA 회장은 "노년에도 스윙폼이 젊은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언행도 결코 흐트러지지 않았던 신사"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큰 아들 연훈(사업)씨 등 2남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3일 오전 7시이다. 장례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상조회장으로 치러진다. 02-3010-2293.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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