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과 창조의 모임 등 3개 교섭단체 정책위의장이 합의문을 발표했을 때 기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인사 파동’ ‘쇠고기 특위’를 놓고 싸우느라 82일 동안 원구성도 하지 못했던 여야다. 하루 전 여야 원내대표는 “초당적 협력”이라는 구호에만 한목소리를 냈을 뿐 각론에선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정책위의장 회담 첫날 타결을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3당 정책위의장은 이런 예상을 ‘기분 좋게’ 외면했다. 합의문에선 두 가지 대목이 눈에 띄었다. 강만수 경제팀 교체 요구가 사라진 것과 은행의 자구노력을 강조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케 한 점이다. 민주당은 줄기차게 요구했던 경제위기 대응의 선결과제 중 1번 카드인 경제팀 교체 주장을 잠시 내려놓았다. 한나라당은 자칫 ‘관치금융’ 논란을 일으켜 ‘금융 자율화’를 외쳐왔던 자신들의 이념을 꼬이게 할 수도 있는 야당의 ‘은행 책임론’에 수긍했다.
이들을 통 큰 합의로 이끈 건 협상 테이블에 쏠린 국민들의 시선이었을 게다.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의 ‘공포’를 기억하는 시선들. 누구도 협상 결렬의 책임을 떠안기는 버거운 형편이었다.
그렇더라도 대화와 타협의 의회정신을 발휘한 이들의 결단은 높이 살 만하다. 특히 협상 주역이었던 임태희(한나라당)-박병석(민주당) 정책위의장 간 협상라인이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는 돋보였다. 9월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붙었던 정쟁에 쉼표를 찍었던 것도 이들이 조율한 가축전염병예방법 타협안이었다.
박 의장은 “(강만수 경제팀 교체를)당장 해야 하는지, 약간 고비를 넘기고 해야 하는지 탄력적”이라며 융통성을 보였고, 임 의장은 “야당의 적극적 문제제기가 있어 은행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화답했다. 자유선진당 류근찬 정책위의장도 “경제팀이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데 공감하지만 이 시점에 바꿔야 하는지 고민스럽다”며 중재자 역할을 했다.
타협은 각 당의 이익도 지켰다. 민주당은 소수라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정부·여당의 정책에 개입할 길을 열었고, 한나라당은 오랜만에 “여당다운 추진력을 보였다”는 평가를 얻었다. 21일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이 낸 ‘초당적인 합의를 이뤄준 야당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논평은 귓가에 여운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임장혁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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