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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따라 도시기행 ① 육군사관학교 “시민들께 경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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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바쁜 도시생활에서 철로의 의미는 무엇일까. 출퇴근의 수단 정도에만 그치는 것일까. 조그마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돌아보면 도시의 레일 위에도 낭만은 있다. 주말, 자동차를 놓고 철도나 지하철 편으로 가족과 함께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도시의 오아시스’를 따라가 본다.

17일 오후 4시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 850여 명의 생도가 모였다. 모두 흰색 바지에 상의 어깨 부분이 노란색 술로 장식된 예복을 갖춰 입은 모습. 모자에 달린 하얀 깃털 모양 장식이 가을바람에 살랑거렸다. 정렬된 가운데 누구 하나 작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 사이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날 육사를 방문한 약 400명의 시민들도 숨을 죽였다.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 모인 시민들이 매주 금요일 오후 열리는 생도들의 화랑의식을 관람하고 있다(左). 야외 무기전시장에서 어린이들이 1970~80년대 쓰였던 정찰용 헬기를 구경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부대~차렷!”

연대장 생도의 힘찬 구령이 연병장을 갈랐다. 이에 맞춰 생도들이 움직이며 내는 ‘착착’ 소리가 이어진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진행되는 ‘화랑의식’을 치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생도들이 주관하는 행사로 한 주의 성과를 돌이켜보고 다음 주에도 학업에 정진하자는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다.

약 30분에 걸친 의식이 끝나자 생도들은 열을 맞춰 행진 형식으로 연병장을 돌아 퇴장했다. 방문객 앞을 지날 땐 “시민들께 경례!”라는 구호에 맞춰 “충성!”을 외치며 예검으로 경례를 올렸다. 흐트러짐 없이 통일된 동작에 감탄한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생도 기숙사도 볼 수 있어=지난 1일 육사는 무료 개방을 시작했다. 1946년 이후 정문에 있던 바리케이드를 없애고, 안내판과 녹지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섰다. 나이에 따라 1000~2000원씩 받던 입장료는 폐지됐다. 요즘 하루 입장객은 300명 정도다. 이날도 인근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온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정 안에 가득 찼다.

이익현(4년) 연대장 생도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의식을 시민들 앞에 선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생도가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며 “방문객 모두의 기억에 남을 만한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매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별도의 승인 절차를 거치면 생도들의 기숙사인 화랑관과 종교시설 등도 볼 수 있다. 장애우나 노약자 방문 시 교내에 차량 진입을 허용하고, 필요에 따라 학교 차량도 지원한다.

◆1만 여 무기 ‘가득’=육사는 지하철6호선 화랑대역에 내려 가을단풍을 즐기며 20분 정도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곳. 경춘선 화랑대역에서 내리면 5분 내에 도착한다.

개방 행사는 화~금요일 생도 또는 군무원의 안내에 따라 하루 세 차례 견학 형태로 이뤄진다. 코스는 1만여 점의 군사유물이 전시된 육군박물관-학교의 62년 역사를 보여 주는 육사기념관-조선 초 군업무를 맡던 기관인 삼군부 청헌당-야외 무기전시장 순이다. 코스를 둘러보는 데 3시간 가까이 걸린다. 화랑의식은 매주 금요일에만 열린다.

이 가운데 육사기념관 외벽에 붙어 있는 역대 졸업생 전원의 이름표는 인기 코스다. 중장년층들은 기수별로 붙어 있는 1만8000여 개의 명패에서 이후락·전두환·노태우·장세동 등 익숙한 이름을 찾아보곤 한다. 선사시대부터 사용돼 온 무기 등 각종 전쟁 사료가 전시된 육군박물관은 학생들의 교육장소로도 활용 가능하다. 전면 개방에 맞춰 주변 산에 풀어놓은 19마리의 사슴을 찾아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육사 최동철 정훈공보실장은 “미국 웨스트포인트 등 선진국 사관학교들도 시민에게 학교를 개방함으로써 군과 민의 괴리감을 없애고 있다”며 “육사의 폐쇄적인 느낌을 없애고 누구나 방문해 쉬고 학습할 수 있는 시민공원 이미지를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문 신청은 전화(02-2197-6120~4) 또는 육사 홈페이지(www.kma.ac.kr)를 통해 1주일 전까지 해야 한다.

최선욱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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