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주민에 의한 ‘풀뿌리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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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역주민들이 행사를 주도한 구절초축제는 사흘간 30여 만명의 관람객이 몰렸다.[정읍시 제공]

 지난 12일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 구절초축제 현장. 5만여㎡ 넓은 야산을 하얗게 물들인 구절초 밭은 몰려드는 인파로 북적였다. 축제 참여를 위해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량은 10㎞나 떨어진 운암호 주변까지 늘어설 정도로 길게 꼬리를 물었다.

가족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이현웅(공무원)씨는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농촌체험 프로그램 등이 잘 어우러져 한마당 잔치같다”고 말했다.

풀뿌리 지역축제가 뜨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 꾸민 프로그램을 성공시켜 관 주도의 난립한 지역축제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풀뿌리 축제의 성공=정읍 구절초 축제장의 주진행자는 산내면 주민들이었다. 대부분의 지역축제는 지자체와 이벤트업체가 행사를 주도하고,지역민들은 구경꾼에 불과하다.

산내면의 경우 농민들이 구절초 밭에 야외 카페를 설치해 운영하고 홀태·도리깨·똥장군 등 농기구 체험장, 토끼·오리·염소 등 동물농장을 직접 열었다. 삼베짜기와 짚공예, 구절초 비누·향 주머니 만들기 등 코너로 마련했다.

구절초 축제는 3일간 무려 30만명이 몰렸다. 이 행사 비용은 전체 1억원. 먹거리 장터, 농특산물 판매 등을 통해 관광객들이 현장에 뿌리고 간 돈은 10억원 이상으로 집계됐다.

지난 8월 7~16일 열렸던 진안군 ‘마을축제’도 20여개 산촌 주민들이 프로그램을 직접 꾸며 진행했다. 마을회관에 도시민을 초청해 고추·옥수수 따기 등 농사체험을 제공하고 생태 건축·모깃불 대화 등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주민들은 방송공연을 전제로 3000만원 지원하겠다는 외부제의도 축제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유명순 정읍시 관광농업담당은 “지역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주민들의 축제’가 난립한 향토축제에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립한 지역축제=전북지역에서만 한해 50여 개의 축제가 열린다. 들어가는 비용만 130여 억원에 이른다.

행사별로는 세계소리축제가 23억원으로 가장 많고, 김제 지평선축제(10억5000만원), 무주 반딧불이축제(10억6000만원) 등이 뒤를 잇는다. 5억원을 넘는 축제도 남원 춘향제(9억300만원), 순창 장류축제(6억5800만원), 군산 세계철새축제(5억9000만원), 정읍 황토현동학축제(5억2500만원), 전주 천년의 맛잔치(5억1000만원) 등 5개나 된다.

축제 비용은 국비 10억원, 도비 22억 6000만원, 각 시·군비 82억여원, 협찬 등 기타 12억 7800만원으로 전체의 90%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최영환 전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지역축제가 단체장을 위한 생색내기용으로 무분별하게 치러지면서 혈세가 낭비되는 측면이 있다”며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사 위주로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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