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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난극복勞使손잡았다>1.근로자들이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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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경기침체 국면이 계속됨에 따라 위기상황에 인식을 같이하고 「우리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근로자들의 자발적 노력이 잇따르고 있다. 사업구조 조정.인원 재배치등이 최고 경영자의 일이라면 경비절감.생산성 향상등은 근로자의 몫으로 작은 것도 많이 모으면 큰 것이 된다는 각오다.
최근 사업장마다 「경영난 극복」에 동참하는 근로자들의 움직임을 세차례 나눠 짚어본다.
[편집자註] 「지방공장에 전화를 걸때도 시외전화 대신 구내 회선을 사용,비용을 줄입시다」「근무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사무용품을 아껴씁시다」.
최근 LG전자의 게시판마다 이색적인 내용의 결의문이 나붙었다.회사 총무과에서 내건 비용절감 캠페인이 아니다.이 회사 노조에서 「위기극복을 위해 근로자들이 나서자」는 각오아래 만든 결의문이다.
이처럼 노조를 중심으로 어려운 경영여건을 헤쳐나가기 위해 근로자들이 팔을 걷어붙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노사화합으로 감량경영 바람을 이겨나가자는 애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이들 근로자는 스스로 생산성 향상및 경비절감운동을 강도높게 펼치고 있다.
근로자들의 동참이 가장 먼저 이뤄진 분야는 「비용절감운동」.
최근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회사의 경영합리화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발표한 LG전자 노조는 가을체육대회등 각종 행사의 비용을10%줄이고 점심이나 부회식 비용도 10% 절감키로 했다.
서울영등포구문래동 LG강서빌딩의 노조본부 사무실에서는 이달부터 노조 대의원등이 방문해도 외식을 자제하고 구내식당의 1천5백원짜리 식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영호(李永湖)노조 총무부장은 『어차피 모든 비용이 회사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비용절감을 위해 구내식당을 이용하기로 한것』이라고 말했다.
구본무(具本茂)그룹회장이 인위적인 명예퇴직등 감원을 피하겠다는 고용안정화 노력 의지를 밝힌데 대한 노조의 화답이다.
한보철강 노조도 최근 구내식당에서 잔반통을 아예 없애고 잔반줄이기운동을 펴고 있다.마음만 먹으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피부에 와닿는 것들이다.
이 회사 최창대(崔昌大)노조위원장은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데공감,이 운동을 시작했으며 노조원들의 참여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불황의 바람이 세찬 자동차업계에서도 스스로 근무시간을 연장하거나 특근을 자청하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회사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위기감에 근로자들이 나선 것이다.
올봄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었던 기아자동차는 지난 제헌절(7월17일)이 휴무일이었으나 생산직 사원 전원이 출근해 밀린 작업을 처리했다.
아시아자동차에서도 지난 제헌절.광복절등 공휴일에 91년이후 처음으로 일부 부서 노조원들이 자발적으로 특근을 지원하고 나섰다. 한장수(韓長守)기아자동차 노조총무는 『회사가 어려운 만큼노조도 힘을 합치는 것은 당연하다』며 『우선 주머니부터 두둑하게 불려놓고 우리 몫을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회사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노조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나선 회사들도 많다.
이제 「판매전쟁」에서도 「노사불이(勞使不二)」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LG산전은 「불황을 노조가 앞장서서 타개해나간다」는 목표아래이달부터 노조원들이 전국의 공사현장을 방문,이 회사가 생산하는엘리베이터 판촉에 나섰다.
1천3백여 노조원들이 영업판매사원을 자청한 결과 한달도 채 안된 기간중에 화성.오산등 영업직원들의 손길이 닿지않는 지방도시에서 8건을 수주하는 실적을 올렸다.
현대자동차는 이달부터 「한마음운동」을 노사합동으로 펼쳐 월 7만대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린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본사는 물론 연구소.공장직원들이 총동원돼 「나도 한대 더 판매한다」는 슬로건 아래 총력전에 들어갔다.
LG전자도 직원들은 물론 가족들이 주변 사람을 만나 이 회사의 가전제품을 홍보하는 적극적인 판매활동까지 펼치고 있다.
대기업에서 불기 시작한 이런 불황타개 바람은 이제 중소기업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경북구미의 동국종합전자에서는 노조가 공정관리.자재수급등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해 연말까지 6~10% 이상의 생산성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노조원들은 이를 위해 올 가을 정기체육대회도 반납하고 생산증대 노력과 함께 제품홍보.애프터서비스.거래선 동향조사까지 나서고 있다.
***26면 『시리즈』로 계속 세라믹제품 생산업체인 경북경주의 삼손퍼라이트 공장도 노조 주도로 휴일에도 근무하는등 생산성향상운동을 벌인 끝에 지난 8월 창사이래 최고생산량을 기록했다. 평소 13억~14억원에 머물렀던 이 공장의 총생산액이 8월에는 16억원으로 껑충 뛴 것이다.
이에 대해 백일천(白日天)노동부 노사협의과장은 『근로자나 사용자나 자기 기업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다』며 『기업이어려우면 서로 인내해 감원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막아 고용안정을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찬경(羅燦璟)LG전자 노조위원장은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제부터는 수직적.대립적 관계인 노사의 개념을 수평적.협력적 관계인 노경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조남홍(趙南弘) 경총부회장은 『노사가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며 『노사화합은 소비자에 대한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이같은 움직임이 확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홍병기.이원호.장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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