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중국교포관련 보도 신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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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그마한 감기를 앓는 어린이가 중태인 것처럼 크게 앓는 소리를 내면 어른들은 그 애가 엄살을 부린다고 한다.엄살을 자주 하면 그 아이가 정말 중병에 걸려 신음할 때도 부모는 『또 엄살이네』하며 방심해 버린다.위험천만한 일이다.
진실을 여실히 밝히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겠으나 언론이 엄살을부릴 때도 있다.한국의 신문들은 신속한 정보전달과 다각적인 시각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반면 과당경쟁으로 진실성 고수의 감각이 둔해지고 반짝효과.상업효과에 편중해 언론의 신중성.공정성.
진실성을 훼손시키는 일은 없는지 한번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대서특필된 선상살인사건을 보면 그 보도 자체는 필요한 것이지만 보도자세에 과잉반응 소지가 없지 않다.일부 기사는 「옌볜(延邊)사람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비약까지도 서슴지 않으며 흥분했다.선원학교 지원을 중지하고 향후 조선족 승선도 제한해야 한다고 즉흥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그러나 문제의 선상주동자는 우선 옌볜사람이 아니라 휘남현의 교원이었다.막상 그가옌볜사람이라고 해도 그와 그들 몇몇이 옌볜사람을 대표할 수는 없다.나무는 나무고 수풀은 수풀이 다.그 교원이 선상 상식과 단련이 부족했기에 그런 사건이 가능했다는 후문도 있다.그런데도선원훈련을 중지하겠다면 3D업종 외국인 고용을 포기할 심산인가. 그리고 한국을 망라해 세계 어느나라에나 범죄는 존재한다.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 국민 전체를 「다시 보아야」하는 것이라면그렇게 지고지순한 이가 상종할 만한 나라는 결국 법이 없어도 살아가는 원시부락뿐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에게 조심을 당부하는 것쯤은 괜찮다.하지만 언론이 투자자나 여행객의 공포심을 부채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옌볜과학기술대학 기아훈련원 산하 모 공장사장이심장마비로 사망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한국의 일 부 언론들이 독침설을 들고 나온 것은 물론 대문짝만한 글씨로 옌볜지역을 「총칼이 번뜩이는」 살벌한 고장으로 묘사했다.여행객들의 얼굴에 공포와 긴장의 그늘이 드리우지 않을 수 없다.옌지(延吉)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도시이지■공포.테러의 도시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언론의 힘은 진실과 긍정에 있다.과장보도는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큰 힘으로 될 수 없고 과대포장도 거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 거품이 오색영롱하게 보이는 시간은 짧고 뒷맛은 씁쓸하다.
오늘의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나라다.더불어 현지공장이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시점에서 진실과 공정에 입각한 어른스런 풍토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장정일 <옌벤일보 부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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