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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외모? 지금 내 숙제는 체중 더 불리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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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 다섯 개를 세우며 금메달을 따낸 장미란. 그 후 그녀는 광고를 찍고 텔레비전에 출연했으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꿈 같았던 두 달. 그리고 이제 그녀는 다시 세계 최고의 여자역도선수로 경기장에 돌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진지했고, ‘챔피언의 아름다움’ 역시 변함없었다.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 장미란을 중앙SUNDAY가 보성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기를 내뿜던 8월, 중앙SUNDAY는 ‘여자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 역도 선수 장미란을 주목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이 ‘챔피언의 몸매(Championship bodies)’라는 베이징 올림픽 특집 그래픽을 게재하면서 장미란을 으뜸으로 꼽았을 무렵이었다. 이 그래픽에는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를 비롯한 5명의 세계적인 선수가 등장한다. 자신의 종목에 적합하게 발달한 몸이야말로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이라는 주장을 담은 이 그래픽에 장미란의 사진이 가장 먼저 나온다. 각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에 가장 적합한 선수 5명 가운데서도 장미란을 으뜸으로 꼽은 것이다. 그러나 중앙SUNDAY는 단지 운동선수로서 장미란이 지닌 아름다움에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장미란이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삼성의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밝은 표정으로 시구하고 있다. 이영목 일간스포츠 기자

장미란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도 확실히 아름다웠고 올림픽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확인시켰다. 이제 그녀는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스포츠 스타 가운데 한 명이며 광고모델이고, 각종 매스컴이 즐겨 초청하는 손님이 됐다. 그러나 그녀가 세계 최고의 역도 선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장미란 자신도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올림픽이 끝난 지 두 달. 경기장에서 만난 장미란은 여전히 최고의 선수였고, 변함없이 아름다운 스물다섯 처녀였다.

지난 8월 16일 베이징 올림픽 역도 여자 75㎏ 이상 급에서 세계를 번쩍 들어올리며 국민적 영웅이 된 장미란(25·고양시청)이 두 달 만에 다시 역도장에 나왔다. 16일 전남 보성에서 끝난 전국체전이 무대였다.

장미란은 ‘에쓰오일’의 텔레비전 광고에 차승원ㆍ유재석씨와 함께 출연했다.

장미란은 ‘에쓰오일’의 텔레비전 광고에 차승원ㆍ유재석씨와 함께 출연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올림픽 후 지낸 두 달이란 시간은 총알처럼 지나갔다. 장미란에겐 바벨을 들고 버텨야 할 3초보다 빨리 지나간 것 같다.

베이징 올림픽 역도장의 무거운 바벨 앞에서 보인 침착함과 집중력, 압도적인 기량, 그리고 금메달 수상 후 드러난 그의 성실함과 겸손함 때문에 큰 덩치에 무뚝뚝한 장미란은 어느덧 살가운 누이동생, 언니 ,누나의 이미지로 국민 앞으로 다가왔다. 세상은 그의 진짜 모습을 뒤늦게 확인했을 뿐이다. 장미란은 베이징 올림픽 전이나 뒤나 그 모습 그대로였다.

13일 보성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역도 여자일반부 75㎏ 이상급 용상 경기에서 145㎏을 들어 우승한 뒤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보성=뉴시스

보성에서 만난 장미란의 모습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후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다른 선수보다 많은 박수를 받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차분하고 소박했다. 장미란은 “아직도 올림픽 금메달이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간절히 원하는 게 실현되면 잘 믿기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지난 두 달의 시간, 장미란에겐 새로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프로야구 경기 시구, TV 오락프로그램 출연, 대학 강단에서의 강의, 미국 방문, CF 촬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다. 자신의 올림픽을 곰곰이 씹어 보고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장미란은 “태어나서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일 것이다. 11월 아시아 클럽선수권대회를 끝낸 뒤에야 올림픽 금메달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변함없는 장미란의 모습, 그의 마음의 시곗바늘은 여전히 올림픽 이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호동 ‘무릎팍 도사’에 출연

장미란은 올림픽 직후 인기 오락프로그램인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 출연,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조용조용하지만 막힘이 없는 장미란의 솔직한 언변은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다. 여자로서 역도를 시작했던 애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언론의 지나친 관심에 대한 스트레스 등 잔잔하게 털어놓은 인생 스토리는 인간 장미란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된 계기였다.

그의 모습은 한가인의 코, 김태희의 눈 처럼 성형외과 의사들의 견해가 합쳐진 것 같은 천편일률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줬다. 물론 그도 고민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미란은 이제 외모와 관련한 고민을 완전히 털어버렸다. “외모를 생각했다면 올림픽 금메달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체중을 더 불리는 것이 숙제”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꿈 같았던 두 달

대학 강단에 선 추억도 잊을 수 없다. 장미란은 지난달 9일 상명대에서 특강을 했다. 그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고 3관왕인 박태환과 함께 입국했을 때 비참한 심경이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보니 나 때문에 힘들어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고 했다. 성공에 취해도 될 만한 젊은 선수의 따뜻한 배려에 강의실을 채운 400여 명의 학생들은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올림픽 직후 광고제작인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올림픽 메달리스트 중 최고의 광고모델로 뽑힌 장미란은 CF 출연도 했다. 광고 출연 섭외가 밀어닥쳤지만 고사하다 정유 업체의 광고에 개그맨 유재석, 영화배우 차승원과 함께 출연, 차분하지만 명쾌한 메시지를 던졌다. 만일 장미란이 광고에 나와 호들갑을 떨었다면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장미란이 아니다. 그런 장미란이라면 인상·용상 합계 326㎏의 바벨을 들지 못했을 것이다. 장미란은 “낯설고 힘든 일이었지만 재미있는 추억이었다”고 말했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세상의 기준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닌 듯싶다. 장미란이 3관왕을 차지한 13일 전남 보성체육관은 의외로 한산했다. 전날 박태환(19·단국대)과 이용대(20·삼성전기)의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이 만원 사례를 이룬 것과 무척 대조됐다. 경기가 끝나자 장미란의 주위엔 10여 명의 아이들만이 사인을 요청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장미란의 인터뷰를 위해 모여든 취재진보다 적었다. 12일 전국체전 수영경기가 열린 목포실내수영장은 박태환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붐벼 박태환의 경기 직전부터는 출입이 통제됐다. 같은 날 여수에서 열린 배드민턴 경기장도 인산인해를 이루기는 마찬가지. 장미란의 경기가 평일 밤 한적한 시골도시에서 열린 반면 박태환과 이용대의 경기는 일요일인 데다 큰 도시에서 열린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장미란은 이미 예견이라도 한 듯 덤덤했다. “제 팬들은 어린이들밖에 없어요. 밤늦게까지 성원해준 어린이 여러분 고마워요”라며 농담을 던진 장미란의 얼굴엔 씁쓸함도 배어 있었다. ‘아름다운 장미란’은 인사치레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보성체육관을 찾은 소수의 관중은 장미란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수십 명의 관중은 장미란이 경기에 임하자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장미란의 동작 하나하나에 드러나는 압도적인 경기력은 최고가 되기 위해 한없이 스스로를 단련한 흔적을 뚜렷이 드러냈다.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리기 위해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어진 장미란의 몸매는 TV 오락프로나 축하행사 무대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는다. 경기장에서 장미란의 모습은 장황한 설명이 없더라도 아름다움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최고 때보다 20㎏ 모자란 바벨 들어

전국체전에서 장미란의 얼굴은 다소 맥이 빠져 있었다. 기록종목 선수의 숙명은 도전의 연속이자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경쟁자와 기량 차이가 현격한 전국체전은 장미란의 전투의식을 고취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했다. 게다가 올림픽 금메달 후유증으로 훈련량이 모자라 100% 실력을 보여줄 조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장미란은 꽤나 멋쩍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기록보다 20㎏ 이상 모자라는 바벨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그는 “많은 분들이 올림픽 때처럼 기대를 하셨을 텐데 많이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장미란은 목표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장미란은 “11월 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 클럽선수권대회 때는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뒤가 되면 내년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를 위해 차분히 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로 있는 한 내 기록을 깨기 위해 나와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장미란은 가까운 친지에게 “올림픽이 끝나면 산에 들어가 살을 빼겠다”는 푸념도 했고, 항간에는 “장미란을 광고모델로 추천받은 모 기업이 외모를 이유로 거절했다”는 루머도 나돌았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소유자로 인정받았고, 가장 선호하는 광고모델이 됐다. 그리고 훈련을 안 하면 금세 줄어드는 체중 때문에 고민하는 진지한 역도인이 되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속이 꽉 찬 스물다섯 처녀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더욱 깊고 은은하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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