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미국 대선] 두 후보 뼈 있는 농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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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나는 방금 모든 선거참모를 해고했다. 그들의 자리는 ‘배관공 조(Joe the plumber)’가 차지할 것이다.”

미국 공화당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는 16일 밤 뉴욕에서 가톨릭 대교구가 주최한 빈곤아동 돕기 자선파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물론 농담을 한 것이지만 진담도 들어 있다. 선거일(11월 4일)까지 ‘배관공 조’를 활용한 선거전략을 쓰겠다는 뜻이다. 조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유세 현장에서 직접 “연매출이 25만 달러가량인 배관회사를 사려는데, 당신 공약대로라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오바마의 세금공약을 물고 늘어진 오하이오주의 30대 백인이다.

이후 공화당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그를 부각시켰고, 15일 대선 TV토론에선 오바마와 매케인 모두 그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세금정책을 강조해 일약 ‘유명인사’로 부각됐다. <본지 10월 17일자 16면>

◆대선 화두로 떠오른 ‘배관공 조’=16일 펜실베이니아 유세에 나선 매케인은 항상 자랑하던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보다 ‘조’를 더 많이 입에 올렸다. 그는 “어제 나도 잘했지만 토론의 진정한 승자는 배관공 조”라며 “조가 (오바마를) 이겼고, 소기업이 이겼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미국인은 경제가 어려운 이때 오바마가 세금을 올리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는 배관공 면허를 받지 않았으며, 세금도 체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매케인 진영은 ‘오바마=증세, 매케인=감세’라는 홍보논리를 전파하기 위해 개의치 않고, 조 이야기를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도 ‘배관공 조’를 앞세운 매케인의 공세를 경계하는 눈치다. 오바마는 16일 뉴햄프셔 유세에서 “1년에 25만 달러 이상 버는 배관공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매케인은 배관공 한 명만을 위해 싸우는 것 같다”고 야유했다. 오바마는 측근들의 방심도 경계하고 나섰다. 그는 유세에서 “경솔하거나 자만하지 말라. 뉴 햄프셔란 단어를 상기하자”고 말했다. 올 1월 민주당 첫 경선지였던 아이오와에서 이긴 후 뉴햄프셔에선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역전패한 걸 교훈으로 삼자는 얘기다. 측근들이 대선 승리를 경축하는 대규모 파티를 시카고에서 열 계획을 잡는 등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리려는 모습을 보이자 ‘군기잡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15일 집계한 여론조사 종합에서 오바마는 49.5%의 지지율로 매케인(42.7%)을 6.8%포인트 앞서고 있다.

◆뼈 있는 조크 주고받아=오바마와 매케인은 이날 파티에 나란히 검은 연미복 차림으로 나타나 가시 돋친 유머를 주고받았다. 매케인은 “내가 TV토론에서 오바마를 ‘저 사람(that one)’이라 불렀다”며 “사실은 오바마도 내게 ‘조지 W 부시’(대통령)란 애칭을 지어줬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매케인 집권=부시 3기’라고 주장해 온 걸 꼬집은 것이다.

그러자 오바마는 “내 뿌리는 아프리카인데 버락이란 이름은 아프리카말로 ‘저 사람’을 뜻한다”고 응수했다. 이어 “내 최대 장점은 겸손함이고, 약점은 지나치게 잘났다는 점”이라고 맞받아쳤다. 명문대와 변호사를 거쳐 40대에 상원의원에 오른 경력 때문에 일반인과는 거리가 있는 엘리트로 비춰져 온 데 대해 은근히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두 후보는 덕담도 주고받았다. 매케인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도전한 오바마는 놀라운 재주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며 “내 적수에게 행운을 빌어줄 순 없지만 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바마도 “매케인은 베트남에서 조국을 위해 영광스러운 봉사를 했다”고 화답했다.

워싱턴=이상일·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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