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한국과 미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과 미국 관계가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의 잠수함좌초후 실언(失言)으로 크게 경색됐다가 최근 로드 차관보의 서울 방문으로 봉합돼가는듯한 분위기다.그러나 두 나라 관계는 크리스토퍼의실언만 빼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그 실언에 대 해 우리측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느낌이다.
그 「실언」으로 미국의 감춰진 대북한관이 드러났다고 믿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미국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어느정도 그 전의 대북관계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부시 행정부는접근하는 북한을 모멸적으로,차갑게 대했었다.지난 90년4월 워싱턴을 찾아왔던 평양의 평화및 군축연구소 한성렬과 그 일행은 북.미관계개선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지만 당시 미국은 냉담했다.그때 북한측은 『우리는 미국이 남조선과 똑같은 대접을 우리공화국에 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다.그러나 조금은 변화하는 우리를 이해하고 우호적 관계로 나아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북한에 대해 유화적 접근을 시도했다.그때도 한국은 북한의 핵문제로 민감하게 대응했다.워싱턴의 보수주의자들은 영변핵시설을 기습적으로 파괴할 계획도세웠지만 그때마다 한국측은 그렇게 되면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미국은 한국이 북.미관계에 보다 대범하기를 바랐다.그러나 한국은 매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그래서 얻은 것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북한의 위협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막대한 비용부담이다.북한의 핵에 대한 제어는 미국의 몫이었으며,지금도 미국의 몫이다.북.미접촉에 한국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국의 KEDO부담은 훨씬 적어졌을지도 모른다.
한.미관계를 「혈맹」이라고 믿으며 북.미관계개선을 추구하는 미국이 그 혈맹의 의리를 배반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미국엔 악마의 측면도,천사의 측면도 있다.우리는 미국에 기대할 수 있는 것만 기대했어야 했는데,기대할 수 없는 것까지 기대해온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북.미관계는 급속히 개선될 것이다.북.미관계가 개선되면 될수록 한반도에는 그만큼의 평화가 올 수 있다.북한이 계속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행동하고,잠수함을 남으로 보낸다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따뜻 한 대접을 받을 수 없다.북한이 변하지 않아도 미국이 북한에 접근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미국이 국익을 위해 한국을 저버리고 북한에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다.그경우 미국의 국익은 무엇이겠느냐고 묻 고 싶다.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적어도 앞으로 10년동안 북한은 구매력이없다.미국이 우리를 배반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미 국무부의한 관리는 『한국이 이만큼 성장했는데 왜 북.미관계에 민감한가』라고 내게 물었다.「 이만큼」이란 말 속에는 북한과 비교할 수 없게 된 경제적 발전,과학.기술의 발전,정치발전이 들어있다. 하지만 위의 발전들과 상관없이 북한의 군사력은 막강하다.미국의 군사력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취약점이다.우리는 상징적으로 미군 1개여단쯤 제주도나 강원도에 배치해두고,나머지는우리 군사력으로 북한의 무력도발을 제어할 수 있는 자주국방력이필요하다.주한미군은 분명히 북한의 전쟁도발 억제력을 갖고 있다.그러나 그 이상의 기대는 한국군의 힘을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무모한 협박.공갈을 자행하고 있고,아직도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그 믿음을 산산이 깨뜨려줘야 한다.그것이 미국으로부터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힘이 될 것이며,한국을 진정한 자주독립국으로 만 들게 될 것이다.
崔然鴻 서울시립대.객원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