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아이템] 강렬한 첫인상 원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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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페이스 투 에어(Surface To Air)의 네이비 컬러 가죽 명함케이스와 작가 매기 테일러로부터 받은 명함.

눈이 즐거운 전시가 많아 차 한잔 마실 정도의 틈만 있으면 들르는 곳, 삼성동의 인터알리아(Interalia) 갤러리에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맛깔스럽게 드나들며 매력적인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매기 테일러(Maggie Taylor)의 개인전이 열린다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도 선보인다기에 한달음에 달려갔지요.

믿기지 않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테일러와 그녀의 남편인 사진작가 제리 엔 율스만(Jerry N. Uelsmann)이 관람객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겁니다.

갤러리 디렉터 김인선씨의 소개로 그 부부와 미술, 사진,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매기 테일러가 그녀의 작품이 담긴 명함을 건네더군요. 그녀의 작품을 선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정신없이 오느라 명함을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꼭 명함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부끄럽더군요. 어떤 일이 있어도 파티에 참석할 때는 꼭! 꼭! 꼭! 명함을 챙기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죠.

일을 하면 할수록 느는 게 경력과 명함입니다. 너무 기능이 많은 휴대전화 때문에 요즘은 명함철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고, 명함도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지요. 하지만 인사를 주고받으려면 아직까지는 명함이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꼬투리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근사한 디자인의 명함에는 그 주인의 기호와 개성이 담겨 있습니다. 명함을 보면 상대의 캐릭터를 대강 점쳐 볼 수 있죠. 남에게 깊고 진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도 이 조그마한 종이 쪼가리가 유효합니다.

크리스천 베일 주연, 메리 해론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가 생각나네요. 충격적인 서스펜스 영화라고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시인의 삶을 신랄하게 비꼰 블랙코미디로 생각하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같은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이 비슷해 보이는, 아니 똑같아 보이는 저마다의 잘난 명함들을 자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반면, 매기 테일러가 제게 준 그 명함의 감동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명함 챙기기’를 잊지 않으려고 명함 케이스도 구입했죠. 선물과 함께 건네는 카드봉투처럼 생긴 것으로요. 항상 선물처럼 멋진 만남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 자신에게 선물한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명함을 어떤 식으로 보관하고 있나요?

하상백 (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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