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상품평가損의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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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7일 증권감독원(증감원)은 9월말로 끝난 증권사들의 올회계연도 반기결산에서 상품주식평가손(損)의 25%를 반영하도록결정했다.
증감원은 94년에 95회계연도부터 3년간 연차적으로 증권사들의 「재무구조의 견실화를 기하기 위해」 평가손의 30%,50%,1백%를 손익계산서에 반영하도록 지침을 세운 바 있다.따라서지난 9월말 현재 국내 증권사들의 평가손은 총1 조원 이상을 기록,지침(50%)대로 반영하다간 가뜩이나 나쁜 실적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증권업계의 호소를 감안한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것이 증감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충치위험을 뻔히 알면서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줘 달래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다.증감원은 스스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지금 우리 증권업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모든 자산은 보유중 시가(時價)가 변해도 취득원가로 평가하는것이 「역사적 원가」원칙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 개정된 기업회계기준이 보유유가증권의 기말현재 시가가 취득원가보다 낮을경우 시가로 기록(저가법),미실현손실을 반영케 한 것은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투자자들의 적절한 의사결정을 돕겠다는 배려에서였다.따라서 평가손의 반영비율을 낮춘 것은 증권사들의 실적악화를핑계로 증감원이 마땅히 먼저 생각해야 할 일반투자자 보호를 소홀히 한 처사다.평가손을 아무리 낮추어도 나쁜 것은 여전히 나쁠 것이고 말하자면 재무제표 분식(粉飾)에 증감원이 앞장서고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최근 기업내부의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전세계적인 경향을반영,새로 개정된 회계기준은 시가법을 택해 유가증권 가격이 상승할 경우 평가익(益)을 계상할 수 있게 돼 형평에도 어긋난다.다시 말하면 유가증권을 처분했을때 실현될 가치 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기업의 정확한 재무상태와 영업실적을 기록하는 재무제표의 원래 목적과도 부합한다.
문제는 또 있다.이미 예고한 지침을 증권사들이 우는 소리를 한다고 해 「봐 주는」것은 이들로 하여금 감독당국의 조치가 「에누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다.지난 3월 결산때도 반영비율을 30%가 아닌 1 5%로 「깎아준」선례가 있다.평가손이 아니더라도 무슨 문제든 끝까지 버티면서 예외로 만들 궁리를 하지 않겠는가.마지막으로 이 기준이 지켜질 때 얻어지는 직접적인 효과,즉 과도한 유가증권의 보유로발생할 위험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능력개발에 소홀하게 만들어 증권사의 경쟁력약화에 일조하게 될까 걱정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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