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나나미와의대화>4.카이사르 로마 성벽 허무는 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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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처리한 리스크(risk)를 한가지 말해 주기를 시오노에게청했다.특별히 아름답고 용기있게 처리한 예를 부탁한다고 조건을붙였다. 2천년이란 세월의 간격을 두고도 카이사르를 애인으로 삼아 그리워한다고 말하는 시오노 나나미다.그는 한 10초쯤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입을 연다.
『지금 로마에는 쭉 둘러 성벽이 남아 있습니다.이 성벽은 카이사르가 살아 있던 공화정(共和政)시대의 성벽이 아닙니다.
그 때의 성벽은 지금 있는 것보다 그 둘레가 훨씬 작은 것이었습니다.지금 보시는 것은 서기 3세기가 끝날 무렵 축성됐지요. 카이사르는 당시 로마의 속령(屬領)이 급속하게 커지면서 로마성 안으로 이입해 들어오는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자 더 이상 로마성 안에 이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인구 이입을 금지하는 대신 성벽을 허물어버렸던 것입 니다.』 나는 카이사르가 내렸던 이 간단하고 통쾌한 결단을 시오노로부터들으며 마음 속으로 힘껏 박수를 쳤다.성벽을 허문다는 것은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세상은 안정돼 있는 편이 좋다.산천(山川)이 의구(依舊)하듯제도적 환경도 안정돼 있는 편이 대부분의 경우 백성의 평화로운삶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낡은 제도는,그것이 성벽처럼 딱딱하면 딱딱한 것일수록,새로이 로마를 찾는 세계 백성의 경제적.문화적 교류 욕구를 가로막는 장벽으로서의 부정적 측면이 본래의 로마 시민을 외침으로부터 보호하는 긍정적 기능보다 훨씬 커지는 경우 가 있다.시오노의 말을 듣는다.
『그래서 로마는 3백년이 넘는 기간을 성벽이 없는 도시로 버텼습니다.카이사르가 바랐던 것은 로마제국의 평화였습니다.팍스 로마나가 그것이지요.성벽이란 것은 자신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타인을 거부하는 역할도 합니다.그러한 성벽이라면 세계인이 된 로마 시민에게는 이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카이사르의 생각이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카이사르의 그런 생각에 동조하게 됐고 이래서 로마는 새 성벽을 만들지 않고 지내게 된 것입니다.
3세기 말께 이르러 야만족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로마는 다시 성을 쌓게 됐는데 그때 만든 성벽이 지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로마가 3백년 동안이나 성벽을 갖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현대 도시는 가시적인 성벽을 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뉴욕도 도쿄도 서울도 성벽은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성벽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므로성벽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카이사르는 새로 태어날 제국 로마의 세계관인 팍스 로마나를 확립하기 위해 「성벽 없는로마」라는 리스크를 졌다.그가 위대한 것은 이 리스크를 지는데로마시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점이다.
로마 시민들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배타적 우월주의를 버렸다.시오노의 말은 계속된다.
『인간이란 자신을 벽으로 둘러싸 놓지 않고는 안심하지 못하는존재입니다.개인의 집도 반드시 벽으로 둘러싸지 않습니까.물론 개인 집의 벽은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의도도 들어 있지요.도시의 성벽은 프라이버시의 보호가 아니고 순전히 방 위를 위한 것입니다. 그후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중세에 들어가면 도시가 다시산 위로 올라갑니다.
건국 초기의 로마는 언덕 위에 건설됐습니다.그러다가 평지로 내려왔어요.평지에서는 방어에 절대로 불리하죠.
그래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섰을 때 내려온 것입니다.
중세에 팍스 로마나,즉 로마에 의한 평화가 끝나버리자 도시는다시 산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중세의 성벽은 모두 산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다시 이들 성벽이 없어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오고 난 다음입니다.
이것이 진보인지 퇴보인지 정말 잘 모를 일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형태가 있는 성벽은 없어졌습니다만 인종차별등 내셔널리즘의 무형 성벽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내셔널리즘은 결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난 여름 애틀랜타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 경기 결승전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습니다.』 이 결승전에서는 한국팀과미국팀이 맞붙었는데 딱 한발의 실수로 한국팀이 졌다.승패는 병가(兵家)라기보다 오히려 스포츠맨의 상사(常事)다.
그러나 스포츠가 상업주의와 내셔널리즘에 심하게 오염되면서 승리에만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스포츠 정신의 아름다움은 지금 구제하기 어렵게 추락돼 있다.그런데 진 한국팀이 이긴 미국팀에 걸어가 정중하고 다정한 축하를 보내던 장면에서 시 오노는 여러가지 훌륭한 의미를 발견했었노라고 이 대담중 거듭 나에게 말했다. 『그 한국 양궁 선수들은 한국의 명예를 위해 기여했습니다.그 사람들이 속좁은 내셔널리스트가 아니었다는 건 패하고서도 승자에게 축하를 할 수 있었다는 그 여유로움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내셔널리스트면서도 마음 넓은 내셔널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그 한국 선수들은 보여줬던 것입니다.그 선수들은내셔널리스트였기에 그런 훌륭한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이런 것이 내셔널리즘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저는 봐요.』하기는 로마성벽을 헐어버린 카이사르의 결단도 궁극적으로는 다름아닌 내셔널리즘에 귀착한다고 시오노는 보는 것일 게다.다만 무척 마음넓은 내셔널리즘이기는 하지만.시오노는 자기 자신도 「마음 넓은 내셔널리스트」라는 사실을 이야기 도중 몇차례 비쳤다.
화제가 잘 팔릴 수 있는 책을 쓰는 비법 쪽으로 돌아갔다.그가 말한다.
『많이만 팔리는 것을 위주로 책을 쓰자면 제 경우엔 이탈리아에 관한 비방(非謗)을 쓰면 됩니다.왜냐하면 일본인들은 이탈리아에 관광와 이탈리아제 옷.구두.가방등 패션제품을 잔뜩 사가지고 돌아갑니다.이탈리아가 가진 좋은 점은 다 알고 있어요.그런데 이런 것을 만들어 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험담을 털어놓으면 안심하게 될 거예요.
물건도 좋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도 훌륭하다,이래 놓으면 2중으로 부담이 갑니다.비싼 값을 내고 이탈리아의 패션제품을 산 억울함을 이탈리아 사람의 험담을 읽는 것으로 달래면 훨씬 기분이 가볍게 되겠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쓰면 제 자신의 기분이 나빠질 것입니다.그렇게까지 해서 책을 팔아 돈을 챙기고 싶진 않거든요.』 시오노는 한국의 한 기자가 쓴 『일본은 없다』와 그후 다른 저자가 써낸 『일본은 있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이 팔렸는가 물었다. 『일본은 없다』가 아마 훨씬 더 많이 팔렸을 것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말한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제 짐작에는 「없다」쪽이 「있다」쪽보다10배는 더 팔렸을 것같군요.이웃나라일수록 사람들은 서로 비방하기를 좋아합니다.한국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일본 사람들도한국 비방하는 것을 듣기 좋아합니다.신문기자들 도 그렇고요.혹시라도 현지 주재기자가 이웃나라의 좋은 이야기를 써 보낸다고 해도 본사에 있는 데스크가 그런 것은 싣지도 않거나 대폭 고쳐싣게 되겠지요.』 로마에서 강위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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