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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증시(42)중국의 워런버핏-시대가 낳은 증시의 작은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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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3월 상하이의 티에허진(鐵合金)공장에 양화이띵(楊懷定)이라는 청년이 일하고 있었다. 그는 5년 연속 우수근로자 상을 받을 만큼 성실한 직원이었다. 한 달 53위안의 박봉이었지만 꿈 많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당시 공장에서 절도사건이 며칠 사이를 두고 연달아 일어났다. 분위기가 흉흉했다. 양화이띵은 엉뚱하게도 절도범으로 의심받게 된다. 아무리 부인해도 주변 사람들은 그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마음고생이 컸다.

며칠 후 진범이 잡혔다. 누명이 벗겨진 것이다. 그러나 양화이띵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는 무작정 사표를 던진다. '하늘이 나를 낳았다면, 반드시 쓸모가 있겠지(天生我才必有用)'라는 생각이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그는 우연히 신문에서 '국채 시세'코너를 발견한다. '국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는 호기심에서 거래소로 달려갔다. 창구에 '104위안에 매입하면 연 15% 이자를 받게 된다'라고 쓰여있었다. 그는 5년 여 직장생활을 하면서 꼬깃꼬깃 모은 돈 2만 위안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주판알 튕기기가 시작됐다.

"2만 위안 어치 국채를 사면 연간 약 3000위안의 이자를 받게 된다. 그 돈을 은행에 묻혀 두면 기껏 1080위안(당시 금리 5.4%)의 이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국채를 살 경우 2000위안을 더 버는 셈이 아닌가. 와우! 철공소 연봉의 3배 이상이다."

양화이띵은 2만 위안을 몽땅 국채에 투자했다. 그러나 호기를 부린 것도 잠시, 그는 국채 가격이 매일 변한다는 것에 걱정이 됐다. 본전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거래소에 다시 갔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어제 104위안하던 국채가 오늘은 112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는 갖고 있던 국채를 몽땅 팔았다. 800위안이 남았다. 철공소에서 1년 죽어라 일해도 만지기 어려운 돈을 단 하루 사이에 번 것이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식자(識者)들은 이를 금융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그에게는 '돈 놓고 돈 먹기'의 세계일 뿐이었다. 양화이띵은 그 세계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는 별명을 가진 '양바이위안(楊百萬.사진)'은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에는 7개 도시에 국채거래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동일한 상품임에도 거래소간 가격이 달랐다. 상하이에서는 98위안 하는 게 안후이에서는 94위안에 팔리는 식이다. 양화이띵은 원시적인 투자에 나서게 된다. 상하이에서 버스를 타고 12시간여 달려 안후이에 도착해 국채를 사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파는 것이다. 그렇게 전국을 돌았다.

개미처럼 전국을 쏘다닌지 1년 여, 그는 채권투자로 약 100만 위안을 벌었다. 엄청난 돈이다. 그는 집에 지폐 계수기를 사야했을 정도였다.

1989년 상하이에 주식 점두거래시장이 열렸다. 공상은행신탁투자공사 상하이 징안(靜安)영업소에 가면 주식을 사고 팔 수가 있게 됐다. 양화이띵은 '도박장'이 채권시장에서 주식시장으로 바뀔 것으로 직감했다. 주식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90년 여름 디엔전쿵(電眞空)이라는 회사의 주식(액면가 100위안)을 91위안에 3000주 매입했다. 상하이 증시 설립을 앞두고 디엔전쿵 주가는 급등하더니 800위안까지 치솟았다. 팔았다. 1991년 12월 상하이 증시가 열렸다. 띠엔전쿵은 3.75위안(액면가 1위안)에 거래를 시작했다. 첫 날 거래된 1000주 중 500주가 양화이띵의 몫이었다. 주가는 곧 5.00위안으로 뛰었다. 또 팔았다. 그가 파니 3.70위안으로 떨어졌다. 3.75위안에 다시 사 장기 보유를 하게 된다. 90년대 초 주가가 폭등하면서 이 회사의 주식은 무려 25위안까지 올랐다.

'양화이띵'이라는 이름은 순시간에 주식시장에 퍼졌다. '마이더스의 손'이었으니까 말이다. 사면 오르고, 팔면 떨어지고…. 그래서 언론은 그에게 '양바이완(楊百萬)'이라는 별명을 안겼다. 100만 위안을 후딱 버는 사나이라는 뜻이었다.

'투자의 신' 양바이완의 신화는 90년대 후반에도 계속된다. 1994년 7월 말 상하이 주가가 300포인트 선으로 급락하자 양바이완은 정부의 부양책을 직감했다. 거금을 투자했다. 역시 부양책이 나왔다. 1500포인트까지 폭등장세가 이어졌다. 그는 4배 튀겨 먹고는 시장에서 빠져 나왔다.

90년대 말 그는 홀연 주식시장을 떠난다. 그가 찾아간 곳은 부동산시장. 상하이에서 평방미터당 1300위안을 주고 호화주택 두 채를 샀다. 당시 주식 붐이 일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가는 2001년들어 장기 하락세를 타게 됐다.

양바이완이 샀던 집값은 어떻게 됐을까? 1300위안에 샀던 집은 2005년 7000위안으로 뛰었다. 주가가 장기 하락하고 있는 동안 그가 산 집 값은 폭등하게 된 것이다. 2005년 그는 주택을 팔아 치우고는 주식시장으로 돌아왔다. 모두 30만 주를 샀다. 2005년 여름은 중국주가가 1000포인트에서 6000포인트까지 뛰는 출발시점이었다. '투자의 귀신'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지금 중국증시의 최고 스타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어둠 속에서 해메고 있는 주식투자가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거룩한 '말쌈'이 되고 있다. 현재 그가 어떤 주식을 갖고 있는 지가 언론의 최고 관심사다. 그가 강연장에 나타나면 언제나 인산인해가 연출된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난징대 등 중국 유수 대학들이 그의 특강을 잡느라고 아우성이다.

그가 강연에서 빠뜨리지 않는 투자격언이 하나 있다.

"지금 장세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시장을 떠나라(現在看不淸的人, 離場!)'
그렇다면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는 그의 별명은 합당할까?
중국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코웃음을 친다. '시대가 낳은 절묘한 행운아'라는 시각이다. 상하이에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필자의 친구 얘기다.

"그가 대세를 읽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에게 과학적인 투자 분석은 없다. 그가 투자에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중국증시의 허점을 보여준다. 양바이완은 그동안 지독하게도 운이 좋았다. 과연 앞으로도 그럴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에게 워런 버핏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양바이완의 현재 투자 상황은 어떨까? 친구의 얘기가 맞을 수도 있다.

양바이완은 동시에 3종류 이상의 주식은 투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지금 갖고 있는 주식 중 하나가 바로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다. 자신 스스로 주당 48위안에 매입했다고 했다. 그러나 페트로차이나는 2007년 11월 상장할 때 48위안을 기록한 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어 35위안, 19위안 등에서 다시 매입하기도 했다. 페트로차이나의 현재 시가는 11위안 정도다. 그의 예측과는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중국 기자들은 그에게 '페트로차이나는 어떻게 된겁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투자의 신'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성적이니까 말이다. 그러면 양바이완은 "우리 손자를 위해 사 둔 주식이야"라고 답한다. '투자의 신'의 답치고는 궁색하다. "이 폭락장세에 누군들 안전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당당해 보였을 것이다.

그를 두고 '구선(股神.투자의 신) 맞아?'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은 당연하다.

어쨌든, 일반 투자가들에게 양바이완의 인기는 여전하다. 무수한 중국의 '개미'들은 주식투자로 거부를 이룬 양바이완의 신화(神話)를 자기 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바이완은 "나도 언젠가는 양바이완 같은 거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그게 신기루일지라도 말이다.

중국 투자가들에게 최고 선망의 대상인 양바이완. 그는 도박성 짙은 중국증시가 낳은 작은 영웅이었다. 그의 행운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하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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