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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LP카페가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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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0일 홍대 앞에 있는 LP카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음악을 감상 중인 이애란·문성현 부부. 왼쪽은 주인 유민규씨다. [강정현 기자]

지미 핸드릭스·아바·비틀스의 색바랜 포스터가 붙어 있는 가게,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어 종업원에게 건네는 손님들, 빙글빙글 돌아가는 LP판을 통해 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60~70년대 팝송들….

2008년 현재 서울에서만 10곳이 넘는 LP 카페가 운영 중이다. LP 음반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간직한 7080, 여유를 가진 이들이 추억을 음미하며 ‘자기들끼리 노는’ 공간이다.

LP카페는 7080 붐이 일기 시작했던 2001년을 전후로 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 신사동 ‘트래픽’과 홍대앞 ‘별이 빛나는 밤에’ 종로 ‘세라돈’(현재 위치는 남대문으로, 상호는 ‘음악과 사람들’로 바뀜) 등이 모두 이 무렵 문을 열었다.

물론 이대 앞 ‘볼 앤 체인’은 87년 문을 연 이래 21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LP카페 사장들은 최근 2~3년 사이 LP카페의 숫자가 다시 한번 늘어났다고 말한다. ‘음악과 사람들’의 노희택 사장은 “비싼 가격에 거래되던 오디오와 정품 LP판을 싸게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요즘 희귀 앨범이 아닌 보통 정품판은 한장에 4000~5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누가 LP카페를 운영하나

LP카페를 운영하는 이들은 학창시절부터 LP판을 모아오는 등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들이 대부분이다. 학교 밴드부나 다방 DJ를 경험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가게 사장)이 좋아서 운영하는 가게”라고 농담하는 손님도 있다.

지난 9일 찾은 신사동 LP카페 ‘트래픽’. 40, 50대 손님이 대부분이다. 오영길(52) 사장은 바에 앉은 일행과 “형” “동생”하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신청곡이 들어오면 재빨리 몸을 움직여 LP판을 바꿨다. 오 사장은 75년부터 신촌·홍대·명동 등에서 활약한 DJ 출신. 이렇게 돈을 모아 84년엔 자신이 직접 음악다방을 차렸지만 몇 년 못 가 가게를 정리해야 했다. 이후 농사를 지으며 살다 2001년 이곳에 다시 LP 카페를 열게 됐다. 오씨는 “우리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LP 음악 때문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CD는 잡음 없이 깨끗한 소리를 내지만, 오래 들으면 싫증이 난다. 반면 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는 LP 음악은 포근함을 주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압구정동에 있는 LP카페 ‘피터, 폴 앤 메리’의 한계남 사장도 “LP판으로 듣는 음악에선 인간적인 소리가 난다”고 믿는다. 그는 “미세한 잡음까지 들을 수 있는 LP판은 누군가가 실제로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누가 LP카페를 찾나

10일 오후 10시, 홍대 주차장 골목에 있는 LP 카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만난 이애란(48·여)·문성현(44) 부부도 LP 음악의 추억에 젖어 있었다. 30년 전, 이씨는 학교에선 조용한 모범생이었지만, 집에 돌아와선 목청껏 최신 팝송을 따라 부를만큼 음악을 사랑한 ‘음악소녀’였다.

“친구들과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서 대학에 간다’라고 늘 얘기하곤 했어요.”

남편 문씨의 음악 사랑도 뒤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요구르트만 먹는다는 조건으로 음악다방에 몰래 드나들며 음악을 즐겼고, 대학생이 된 후엔 당시 유명한 음악다방이었던 명동 ‘셀부르’와 ‘마이하우스’에 당당하게 드나들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각각 초등학교·중학교 교사가 됐지만 그 시절의 감수성은 잃지 않았다. LP 카페는 물론이고 라이브 음악·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홍대는 두 사람의 집과 멀지 않으면서 부인 이씨의 직장과도 가까운 곳. 이들 부부는 “홍대 주변은 꽉 잡고 있다”며 “가끔 와서 즐기는 곳이 아니라 이젠 일상생활이 됐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있는 7080의 공간

팝송의 향수를 간직한 이들, 대학가요제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간직한 7080들은 LP카페에서 청춘시절 들었던 그 노래를 들으며 옛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이 LP카페를 찾는 것이 꼭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7080이 갈 만한 분위기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노희택 사장은 “1차로 삼겹살에 소주를 먹은 후 2차로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로 가득한 커피숍에 갈 수도 없고, 노래방에 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 그런 이들에게 옛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LP카페는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 장소다. 게다가 가게 주인과 다른 손님들도 모두 비슷한 세대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트래픽’ 단골인 정귀숙(47·여)씨는 “이곳은 조깅 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찾아와 맥주 한 잔만 시켜놓고 앉아있어도 마음이 편안한 안식처”라고 설명했다.

추억의 팝송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손님도 적지 않다. 그러나 누구도 신경쓰거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이승찬(43)씨는 “가끔 LP카페에서 춤추는 분들을 보는데, 추해보이지 않고 멋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LP카페에서 허용되는 자유로움이다.

송지혜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가볼만한 LP카페

( ① 위치 ② 영업 시간 ③ 보유 LP판 ④ 특징 ⑤ 전화번호)

◆별이 빛나는 밤에

① 마포구 서교동 402-18 ② 오후 6시30분~새벽 3시 ③ 5000여 장 ④ 선곡의 기준은 철저하게 ‘손님이 신청한 음악’. 그래서 70년대 팝송부터 90년대 서태지의 ‘하여가’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음 ⑤ 02-337-1886

◆트래픽

① 강남구 신사동 548-5 ② 오후 7시~새벽 3시 ③ 1만 4000여 장 ④ 예전 음악다방처럼 선곡 담당 DJ가 아직도 있고 보유 LP가 많아 웬만한 신청곡은 모두 LP판으로 들을 수 있음.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어 주위에서 놀다가 2차로 가기에도 편리 ⑤ 02-3444-7359

◆볼 앤 체인

① 서대문구 대현동 56-36 ② 오후 3시 30분~새벽 1시 ③ 3000여 장 ④ 21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운영 중인 곳. 21년 동안 딱 세 번 바꾼 갈색 소파에 앉아 옛 음악다방의 추억을 ⑤ 02-363- 6058

◆피터 폴 앤 메리

① 강남구 신사동 576-3 화랑빌딩 ② 오후 7시~새벽 2시 ③ 8000여 장 ④ 오디오에 일가견이 있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특별 오디오 시스템을 사용. 노래 소리가 큰데도 대화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신기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 ⑤ 02-547-2838

◆우드스탁

① 종로구 명륜3가 108-16번지 ② 오후 7시~새벽 3시 ③ 4000여 장 ④ 20대가 즐겨 찾는 대학로의 LP카페. 젊은 분위기 속에서 올드락과 올드팝을 들을 수 있어 ⑤ 02-762-4556

◆음악과 사람들(태평로점)

① 중구 태평로 2가 69-15 ② 오전 11시~새벽 2시 ③ 3000여 장 ④ 낮시간에도 차를 마시며 LP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 진짜 벽돌을 이용한 실내 인테리어가 특별하고 아늑한 느낌. 경향신문 맞은편에 ‘음악과 사람들’ 정동점도 있음 ⑤ 02-738-9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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