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최도석 사장이 2005년 5월 한 대학 강연에서 외환위기 당시 상황을 털어놓은 대목이다. 그때는 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회사마저도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위기에 내몰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10년여 만에 또다시 우리 경제가 위기와 맞닥뜨렸다. 일각에서는 제2의 외환위기를 거론할 정도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당시와 10년이 지난 지금 주요 기업들의 내실은 큰 차이가 있다. 이들의 체력이 몰라보게 강해진 만큼 이번엔 IMF 구제금융 신청과 같은 극단적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채비율 뚝=코스피 시장 시가총액 10대 기업의 재무 구조는 외환위기 이후 크게 좋아졌다.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손색없을 정도다.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액은 지난해 말 현재 6조8897억원으로 97년에 비해 403% 증가했다. 97년 말 현재 10대 기업의 현금성 자산(현금+단기금융상품)은 평균 4489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현재 평균 현금성 자산은 1조8949억원을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뚝 떨어졌다. 97년 당시 10대 기업 중 부채비율이 100% 밑이었던 곳은 공기업이었던 KT&G뿐이었다.
지난해 부채비율 100%를 웃돈 기업은 현대중공업과 KT·신세계 등 3개에 불과했다. 97년 295%였던 삼성전자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11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포스코와 한국전력·KT&G는 부채비율이 50%도 넘지 않았다.
수익성도 확 좋아졌다. 지난해 10개사의 평균 순이익은 10년 전의 10배로 불어났다. KT&G와 KT·신세계 등 3개사를 뺀 나머지 기업은 모두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뒀다. 97년 10대 기업의 당기순이익을 모두 합친 금액이 지난해 삼성전자 당기순이익의 29%에 불과했다.
외형도 크게 성장했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97년 18조4654억원에서 지난해 이보다 242% 증가한 63조1760억원을 나타냈다. 신세계의 경우 같은 기간에 매출이 무려 438% 늘었다. 10대 기업의 매출은 평균 155% 증가했다.
◆1위 제품 급증=97년 당시 삼성전자가 세계 1등 하는 제품은 D램과 S램 등 2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현재 삼성은 LCD TV와 D램·낸드플래시 등 모두 11개의 1위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97년에야 간신히 미국에 휴대전화기를 처음 수출했지만 10년 만인 지난해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14%를 차지(세계 2위)했다. 현대자동차의 10년 전 대당 평균 수출가격은 8500달러였다. 그러나 이 금액이 지난해 1만4000달러로 뛰어올랐다. 또 현대중공업의 한 척당 평균 수주금액도 10년 새 두 배로 뛰어올랐다.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에 치중한 덕이다.
피닉스자산운용 김석중 사장은 “주요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재무건전성과 지배구조 투명성,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 세 가지 목표를 달성했다”며 “이들 기업은 어지간한 위기에도 헤쳐 나갈 힘을 충분히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희성·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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