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左 여사는 마치 학처럼 고고했다. 청와대 행사 때 필자 부부가 인사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일이 벌어졌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잠시 연설대 아래로 몸을 피했다가 상황이 끝난 뒤 다시 일어나 연설을 계속했다. 그 사이 머리에 유탄을 맞은 육 여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연설을 끝낸 대통령은 육 여사가 보이지 않자 벗겨진 고무신을 직접 주워서 퇴장했다. 정말 비참한 장면이었다. 육 여사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병원 측에서 육 여사의 혈액형이 특수형이라 경호관 중에 그 혈액형이 있는지 찾는 도중 육 여사는 서거하셨다. 육 여사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분통이 터진다.
빈소가 청와대 본관에 차려지고 박 대통령이 서서 가족과 함께 조문을 받는데 얼굴이 벌갰다. 우리도 올라가서 조문을 했다. 박종규 실장이 우는 것을 처음 봤다. 첫 날에는 영애 박근혜(전 한나라당 대표)가 없었다. 그해 서강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레노블대에 유학 중이었다. 육 여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문객 행렬이 청와대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졌다.
장례식 날, 청와대 마당에서 비서실과 경호실 전원이 모여 조촐하게 영결행사를 했다. 경호실 대표는 나였다. 박 실장은 계속 본관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있었다. 정문으로 상여차가 나갈 때 양쪽으로 비서실과 경호실 직원이 서열 순으로 서서 배웅을 했다. 대통령이 우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해 장례식에는 가시지 않도록 결정했다. 정문에서 상여차를 배웅하던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니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모시고 들어갔다.
경호관 중에 안재송이란 사격선수가 있었다. 자기가 평생 권총을 배웠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육 여사가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안재송도 79년 10·26 때 박 대통령을 수행했다가 저격을 받아 사망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나는 사표를 냈다. 사흘 뒤 박 대통령이 불렀다. “며칠 뒤처리하느라 바빴어. 정리되면 다시 부를 테니 휴가 가있어” 하면서 직접 서명을 한 편지봉투에 당시로서는 큰 액수의 금일봉을 주셨다.
나는 곧 육 여사 묘소에 들른 뒤 영원히 청와대를 떠났다. 외교관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이 전쟁 통에 군인이 됐다가 예상치 않았던 청와대 근무까지 하고 24년 만에 사인(私人)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태권도 총재와 체육회 부회장으로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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