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으로 신고식 치른 영화"박봉건..." 김태균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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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두세 마디로 요약되는 영화는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영화의 미덕은 선명한 메시지 전달보다 풍부한 삶의 무늬를드리우는데 있는 것같아요.』 『박봉곤 가출사건』으로 10일만에10여만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적으로 신고식을 치른 김태균(36)감독.그에게 영화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것이다.『박봉곤 가출사건』에서 그는 난폭하지만 소년적인 야구감독(여균동 ),가수를 꿈꿨지만 구박받는 아내가 된 주부(심혜진),아내가 가출한 뒤로 가출한 부인을 찾아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순박한 택시기사(안성기),흥분하면 정사중에도 딸꾹질을하는 초등학교 여선생등 많은 인물을 등장시켰다.
원래 의도는 『이들 삶의 단면단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는 것』이었다.그러나 『흥행을 의식해 사랑얘기로 몰아갔다는 것』이그의 고백이다.
사실 『박봉곤 가출사건』은 김감독의 스타일과 전수돼온 흥행문법이 얽혀 있다.대개의 경우 신인감독이 흥행을 의식해 몸에 배지 않은 고전적인 흥행문법을 끌어들이면 실패하기 십상이다.그러나 김감독은 자신의 스타일과 흥행문법을 잘 조화시 킨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흥행이 중요하지요.한두번 정도 확실히 흥행 능력을 인정받은 다음에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작품을 해볼 작정입니다.』 『박봉곤 가출사건』은 충무로식 코미디에 동화적 요소가 가미돼 독특한 분위기를 준다.떠들썩한 폭소와 잔잔한미소를 동시에 유발시키는 매력이 있다.폭소를 유발시키는 부분이흥행을 위해 끌어들인 전래의 비법이라면 미소를 띠게 만드는 동화적 상상력은 김감독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이다.
원래 김감독의 정서는 맑은 감수성을 가진 아이들의 영화에 끌린다.그리고 길바닥을 떠도는 행려병자처럼 사라지는 것들에 남다른 집착을 느낀다.
그는 한마디로 자신을 감상주의자라고 말한다.그러나 이번 영화에선 분위기를 타는 자신의 고질병이 도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고 한다.그래도 『박봉곤 가출사건』에는 웃음과 함께 페이소스가 묻어 나온다.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자 김감독 특유의 매력이다. 87년 한국외국어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공부한 김감독은 『다음 작품은 드라마가 강한 멜로물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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