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과학적 리더십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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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오는구마, 배가 오누마.”

11일 오후 전남 해남군 우수영관광단지에서 ‘ 명량대첩 축제’가 개막됐다. [전남도청공보실 제공]

야외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장중한 음악이 귓가를 때렸다. 오후 5시가 넘어선 시각, 바다는 눈이 부셨다. 폭이 300여m밖에 되지 않는 좁은 바다, 명량해협. 그 왼편에서 빨간 깃발과 검은 깃발을 단 배 수십 척이 빠르게 전진해 왔다. 왜군이었다. 은빛 물결이 높게 일었다.

“13척이 조선 수군의 전부였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렸다. 그러자 오른편에서 조선의 배가 포를 쏘며 전진해 왔다. 단 13척이었다. 행사를 관람하던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조선 수군이 왜군을 격파하기 시작했다.

2008 명량대첩 축제(14일까지)가 개막한 11일 진도 녹진전망대. 명량대첩 재연행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13척의 배로 133척을 격파했던 기적과도 같은 승리. 이는 명량의 지형적 조건을 이용한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전투를 생생히 다룬 소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도 이 개막식에 참석했다. 뜨거운 햇빛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지만 모자도, 선글라스도 벗은 채 작가는 바다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저 물결 올라오는 거 보세요. 아마 지금 본 배들보다 훨씬 큰 배들로 이 바다가 꽉 찼을 거라고.”

이날 개막식에 참여하기 위해 그는 서울 용산역에서 목포행 KTX를 타고 오면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인간 이순신을 이해하는 자리였다.

◆『난중일기』를 함께 읽다=기차가 용산역을 떠난 지 1시간 가량이 지난 오전 10시 20분, 운동화 차림의 김훈이 독자들이 있는 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대뜸 『난중일기』의 한 대목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흐리고 추웠다. 오수(부하)가 청어 365마리를 잡아왔다….”

김훈의 해설이 이어졌다. “놀라운 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글 같지만 이런 글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알아야 해요. 이순신은 사소해 보이는 이런 일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장군이 아니라 기자 같습니다.(웃음)” 귀를 기울이던 독자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소설가 김훈씨(左)가 11일 명량대첩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행 KTX를 타고 가며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주리 기자]

“이분은 상당히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하들을 굉장히 아꼈죠. 부하와 그의 애인 사이의 관계까지도 기록돼 있을 정돕니다. 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했습니다. 고문을 받고 풀려나던 날은 ‘오늘 옥문을 나왔다’ 단 한 마디를 언급했을 뿐입니다.” 독자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의 얼굴도 덩달아 달아올랐다. “그저 식은땀이 났다, 다리가 아팠다는 내용만 있어요. (그래서) 그분이 겪었을 고문의 과정과 고통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과학주의 입각한 리더십 필요”=독자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자 질문이 쏟아졌다. 국문학도인 배연환(25)씨가 “왜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집중하시죠?”라고 물었다. 김훈은 “대학 2학년 2학기 때 『난중일기』를 읽었다”며 “한 시대의 완벽한 절망을 보고 전율했다”고 답했다.

“『난중일기』를 읽고 학교를 떠났어요. 그 이후로 35년 동안 이순신은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35년이 지난 어느 날 돌연 연필을 들고 글을 썼습니다. 젊었을 때 읽은 책 한 권이 참 무서운 것이죠.”

구새롬(22·대학생)씨는 이순신이 젊은 세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김훈은 이순신이 “철저히 ‘과학주의’에 입각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이었다고 답했다. 조선의 산하를 다 무기로 활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인간의 현실을 좀 과학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 젊은이들은 현실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뿐이예요. 어떤 사태를 보고 이게 내 맘에 드나, 안 드나만 따집니다. 세계를 이런 식으로 보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이순신의 리더십에 맞춰졌다. “이순신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포기하면 안 되는 것임을 몸소 보여준 분입니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리더십, 그걸 배워야죠.”

12시가 조금 넘어 기차는 목포역에 도착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진도로 이동한 독자들은 명량대첩 축제의 개막식부터 뮤지컬 공연, 재연행사까지 모두 보고 오후 7시쯤 서울로 올라오는 차편에 몸을 실었다. 일부 독자들은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린 ‘국제 굿 컨퍼런스’에 참여해 흥겨운 세계굿페스티벌개막을 지켜보는 시간도 가졌다. 

진도=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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