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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랜드마크 14년 꿈 이번엔 반드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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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대만의 초고층 빌딩을 잘 연구해 한국 랜드마크(상징 건물)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대 여론이 많은 것을 감안해) 일자리 창출 등 순기능에 대해 설명하라.” 요즘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주문이 부쩍 많아졌다. 서울 잠실에 555m짜리 마천루를 짓겠다는 14년 숙원을 풀기 위해서라는데…. 그 속사정을 중앙SUNDAY가 들여다봤다.

“나도 모르겠다. ” 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일 양국 재계 총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비즈니스 서밋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 부회장은 말을 아꼈다. 기자들이 제2 롯데월드 건설 문제를 묻자 그는 “모르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부친인 신격호(86·사진) 롯데그룹 회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이 사업이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란 얘기다.

신 회장의 ‘14년 숙원’인 제2 롯데월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금은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신 회장은 9월 말 출국하기 전 몇 차례나 제2 롯데월드 설계도면을 찾았다고 한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이 설계에 대해 보고받으면서 ‘제2 롯데월드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한국 대표 빌딩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일반인에게 안전 문제에 오해가 없도록 하라. 일자리 창출 등 민간경제에 미치는 순기능에 대해 설명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제2 롯데월드에 대한 그의 애정과 함께 한편으론 얼마나 여론을 의식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충돌 가능성 1000兆분의 1”
현장은 어떨까. 서울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일대 8만7182㎡(약 2만6000평) 부지.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과 맞닿은 이곳은 5~6m쯤 깊이로 터 파기 공사를 해놓은 상태다. 1996년 6월 첫 삽을 떴다고 하는데 12년간 해 놓은 공사가 이게 전부다. 그 흔한 포클레인도 한 대 없다.

부지 한 구석에 롯데물산 본사가 위치해 있다. 국내 5위 재벌 계열사의 본사지만 컨테이너 몇 개를 붙여 만든 공사현장 사무실에 지나지 않는다. 제2 롯데월드 사업에 전념하고 있는 이 회사는 95년 본사를 아예 이곳으로 옮겼다.

신 회장은 이곳에 첨성대를 본뜬 높이 555m(112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지으려고 한다. 현재 국내 최고층인 63빌딩(264m)의 두 배 넘는 높이다. 투자비 1조7000억원, 5년간 연인원 250만 명을 투입하는 대역사다. 수익을 내기 쉽지 않아 단기적으로는 적자를 볼 것이란 평가를 듣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라리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으면 당장 수조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신 회장은 단호하다. 서울의 랜드마크(상징 건물)를 지어 그곳에 ‘롯데’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어한다. 제2 롯데월드 사업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신 회장이다.

하지만 신 회장의 꿈은 난관에 부닥쳤다. 고도제한 문제 때문이다. 제2 롯데월드 부지에서 남쪽으로 6㎞ 남짓 떨어진 곳에 군 비행장인 서울공항(경기도 성남시)이 있어서다. 국방부는 ‘서울공항의 비행기 이착륙에 심각한 장애를 받을 수 있다’며 건물 높이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군은 “9·11 테러 같은 유사시를 대비하는 것이 군의 역할이며, 아무리 적은 위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롯데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기술검토 용역을 준 결과 112층 건물을 지어도 실제 충돌 가능성이 1000조(兆)분의 1 이하로 미 FAA 안전기준(1000만분의 1)을 크게 밑돌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반박한다. 양쪽 입장이 한 치 양보 없이 맞서다 보니 제2 롯데월드 건립은 공전을 거듭해 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6일 국정감사에서 “공항을 이전하지 않으면서도 군 작전요건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제2 롯데월드 신축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활주로 각도 조정이나 비행항로 변경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 4월만 해도 “제2 롯데월드가 초고층으로 건설되면 국빈을 태운 항공기가 서울공항을 이용할 때 위험할 수 있다”며 ‘절대 불가’ 방침을 밝혔던 것에 비하면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여기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1년에 한두 번 오는 외국 귀빈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이용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9월 18일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확대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선 제2 롯데월드 허용을 적극 검토하는 내용의 기업환경 개선 추진계획이 보고되기도 했다. 마침 이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반대해 온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이 경질되고 이계훈 합참차장이 새 총장으로 임명돼 제2 롯데월드와 관련된 인사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이 대통령과 제2 롯데월드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는 2003년 미국 FAA가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 의뢰로 한 기술검토에서 ‘비행항로를 일부 조정하면 안전에 영향이 없다’고 결론 낸 것을 근거로 이듬해 555m짜리 112층 빌딩 건설 계획을 송파구에 제출했다. 100층짜리 빌딩을 짓겠다는 설계안을 냈다가 공군의 반대로 무산된 95년 이후 두 번째 시도였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롯데의 초고층 빌딩 건설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제2 롯데월드는 서울시 교통영향 심의(2005년),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2006년)를 통과해 순항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국방부의 요청으로 열린 행정협의조정위원회가 지난해 7월 건물 높이를 203m로 제한하면서 기존 건축심의가 반려됐다. 이에 롯데는 그해 11월 이와 관련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올해 2월에는 행정심판까지 청구했다. 국가 안보를 강조하는 공군과 투자 효과를 강조하는 롯데의 14년 전쟁(?)이 마지막 고비를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신 회장은 1세대 기업가로는 유일하게 현역으로 뛰고 있다. 그는 20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46년 일본 롯데를 창업한 뒤 67년 귀국해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자산 43조원의 한국 롯데를 일궜다. 홀수 달에는 한국에,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무르며 경영한다.

허가 나면 바로 착공

“서울에 있을 때 신 회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계열사 업무보고를 받는다. 주말엔 호텔과 백화점 등 현장을 직접 챙긴다.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격무지만 타고난 강골인 신 회장은 여전하다.” 롯데 관계자들이 전하는 신 회장의 근황은 언제나 변함없다. 신 회장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드물다. 친하게 지내던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작고한 이후엔 국내에서 만나는 재계 인사도 없다. 그러다 보니 80년대 말 이후 신 회장을 만나 인터뷰하거나 사진을 찍은 언론사가 전무한 실정이다.

롯데는 신 회장의 이런 특징을 기업이념인 ‘거화취실(去華就實·겉치레를 피하고 내실을 지향한다)’과 관련 지어 설명한다. “장사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산 규모 국내 5위(공기업 제외) 대기업 총수지만 그 흔한 자서전 한 권 없다. 기업 내부의 일은 자랑할 일이든, 아니든 알리지 않는 게 롯데의 기업문화다.

하지만 제2 롯데월드 얘기가 나오면 이런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관광사업에 대한 신 회장의 집념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롯데 관계자는 “70년 기업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신 회장의 꿈이 여기 담겨 있다”고 말한다. 신 회장은 “외국 관광객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그 무엇이 있어야 외국 사람이 즐기러 올 것 아닌가”라고 강조해 왔다. 관광업이나 유통업도 제조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신 회장의 지론이다. ‘관광입국’에 대한 신 회장의 꿈은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롯데월드 건설로 시작해 전국 롯데호텔 체인에 이어 중국 상하이의 ‘동방명주’에 버금가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설명이다.

“관광산업의 외화 가득률은 90%가 넘는다. 제조업만 좋은 것이고 호텔이나 음식점을 하면 안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잘못된 편견은 버려야 한다.” 신 회장이 틈만 나면 롯데 임직원에게 하는 말이다. 동년배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에 버금가는 기념비적 업적을 생전에 관광 분야에서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신 회장은 제2 롯데월드를 경기도 수원의 에버랜드와 강원도를 잇는 한국 관광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롯데 관계자는 “강원도에 6성급 호텔도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바이가 건설하는 162층짜리 ‘버즈 두바이’를 봐라. 55층 규모 트윈타워의 뛰어난 조형미는 두바이를 예술의 도시로 느끼게 한다. 롯데가 그런 걸 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4년 제출된 설계도에 따르면 제2 롯데월드의 고층 건물은 호텔과 사무실로 사용한다. 저층부는 백화점이나 쇼핑몰로 개발한다. 하지만 제2 롯데월드 건축 허가가 나올 경우 빌딩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롯데 측은 555m가 아니라 600m 이상의 빌딩을 꿈꾸고 있다. 빌딩 높이가 더 높아지면 건물 층수도 훨씬 많아질 전망이다. 공사는 언제든지 재개하는 게 가능하다. 미국의 유명 설계업체 ISOM은 허가만 떨어지면 착공할 수 있을 만큼 작업을 진척시킨 상태라고 한다.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롯데는 상당 금액을 투자한다. 잠실4거리 교통체계 개선을 위해 650억원을 지원하고, 이와 별도로 1000억원을 들여 잠실4거리 지하광장을 800평에서 3500평으로 확장한다. 이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기 한결 쉬워진다. 다만 800억원대로 추정되는 서울공항 활주로 이전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롯데 관계자는 “나중에 조율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강원도에 6성급 호텔도 지을 것”
한편 최근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롯데의 인수합병(M&A) 능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떠도는 국내 금융회사나 유통회사의 M&A설에 롯데가 빠지지 않는다. 롯데가 9000억원의 자금조달 계획을 발표한 점도 그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자금 경색에 대비해 저금리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98년 외환위기 이후 롯데의 행보를 살펴보면 M&A 시도 쪽에 무게가 실린다. 롯데는 대산석유화학·미도파백화점 등 10여 개 기업을 외환위기 이후 싼값에 사들였다. 그룹 측에서도 “좋은 물건은 국내든, 국외든 인수할 수 있다”며 M&A에 나서겠다는 의도를 구태여 감추지 않는 상태다.



롯데그룹은 (2007년 말 기준)
계열사 46개, 총 자산 49조2000억원
-롯데쇼핑 : 11조9600억원
-호텔롯데 : 6조5600억원
-호남석유화학 : 3조5900억원
-롯데카드 : 3조4800억원
-롯데건설 : 3조1400억원
-롯데제과 : 2조1600억원
-롯데칠성음료 : 1조9100억원

박혜민 ·이상재 기자 acirf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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