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 시시각각

사랑을 찾아, 노동을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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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보면 인류 사상 가장 밀도가 높은 거대 문명이 있다. 맨해튼이다. 바로 그곳에서 21세기 최대 비극 2개가 벌어졌다. 2001년 9월 11일 거대한 쌍둥이 건물이 무너졌고, 2008년 가을엔 거대한 벽(Wall)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와 월스트리트는 1㎞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인류에 이는 무슨 의미일까.

미국인에게 9·11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한다. 당시 미국인은 산문(散文)으론 상처를 달랠 수 없어 시를 보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얘기한 시는 W H 오든(1907~73)의 ‘1939년 9월 1일’이다. 오든은 뉴욕에서 살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날 밤 이 시를 썼다. “나는 52번가(맨해튼 중심부)의 선술집에 앉아 있다. 희망은 흩어지고 나는 불안하고 두렵다. 분노와 공포의 파도가 지구의 밝고 어두운 모든 땅을 집어삼킨다.”9·11 비극 중에서도 미국인에게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불길을 피해 70, 80층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이다. 이는 아직도 미국인의 가슴에 자상(刺傷)으로 남아 있다. 9·11 당시 잡지 뉴요커는 손을 잡고 뛰어내린 남녀를 기리기 위해 필립 라킨(1922~85)의 ‘아룬델 무덤’을 인용했다. 이 시는 나란히 죽어 있는 남녀의 조각상을 묘사한 것이다. 미국인은 마지막 구절을 애송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본능, 가장 중요한 진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다’.

 9·11을 겪으면서 미국인은 가족·사랑·친구·화해, 이런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9·11처럼 2008년 가을 이전과 이후의 세상도 다를 것이다. 9·11은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 같은 걸 남겼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가을의 붕괴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많은 미국인은 401K를 통해 퇴직연금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놓는다. 많은 주식이 지금 휴지 조각 비슷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종말을 고했다고, 화려한 ‘기교금융’ 시스템이 바뀔 거라고 경제학자들은 변화를 말한다. 그러나 그래서 무엇이 어떻단 말인가. 내가 1~2년 내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고, 연금은 날아가 버리고 있는데….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갑론을박이다. ‘부시의 저격수’라는 폴 크루그먼은 어제 아침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지난 4주간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했다. 영국처럼 아예 은행에 돈을 넣어 지분을 사들여야 하는데 부실채권 인수라는 어정쩡한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진실의 순간’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같은 신문에서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캐시 멀리건은 정반대 주장을 했다. 실물경제가 생각보다 튼튼하므로 구제금융 없이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수많은 경제학자가 불을 끄는 법을 얘기한다. 그러나 수년 아니 수개월 전이라도 탐욕적 금융시스템에 숨겨져 있는 원자폭탄을 경고한 이는 거의 없다. 몽매한 시민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뉴욕에 사는 넬슨 알렉산더라는 시민이 지난 주말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에 글을 올렸다. ‘애덤 스미스,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있다는 이론을 설파했다. 그러나 한심하고, 편협하며,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경제학자들은 그 소중한 이론을 가꾸고 다듬는 데 실패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 이론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는데 그것은 악마의 도박에 빠진 것이다. 진보의 상징이라는 크루그먼 같은 학자도 죄가 있다. 행복이라고 하는 건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복잡하지 않다. 그저 노동의 가치 속에 쉽게 담겨 있다’.

2008년 가을의 붕괴는 노동이라는 고전적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까. 흘린 땀의 양(量)이 중심이 되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