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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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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미국과 영국의 언론 매체들은 자국 군인들이 이라크인들에게 행한 고문과 가혹 행위를 입증하는 사진과 증언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인권 최선진국'을 자처하는 양국의 군인들이 교도소의 포로들을 발가벗겨 인간 피라미드를 만들게 하고, 알몸 사진을 찍고 '전기고문'과 '성고문'을 했는가 하면, 체포한 이라크인을 폭행.협박하는 것은 물론 머리 위에다 소변까지 보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혐오와 분노를 느끼지 않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양국 군인들의 행위는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국제인권규약' '고문방지협약'등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전쟁 범죄이자 반인도적 범죄의 전형적인 예다. 이제 아랍권에서 후세인과 부시의 구별은 어렵게 되었다.

*** 반미 의식 키운 反인도적 범죄

사실 이러한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는 아랍인에 대한 무차별적 적대감과 인종적.문화적 우월감이 형성됐고, 테러방지라는 명분 아래 고문을 옹호하는 주장이 보수파 진영에서 공공연히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테러와의 전쟁'을 추진하던 미국 정부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은근히 이를 활용.묵인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일전에는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에 대한 조직적 가혹 행위가 발생했고, 이번에는 이라크에서 엽기적 범죄 행위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 미.영 양국은 후세인 정권의 인권유린을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자유'와 '민주'를 이라크 국민에게 선사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번 사태로 전쟁의 명분과 국가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라크에서 들려온 이 끔찍한 소식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고문이라는, 시민에 대한 국가의 테러를 경험했던 우리로서는 이번 소식이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 박종철이 어떻게 죽었는지, 김근태와 권인숙이 어떠한 일을 겪어야 했는지 생각해보라. 영화 '살인의 추억'이나 '효자동 이발사'가 잘 보여주듯 무고한 일반 시민도 형사절차 속에서 심대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도대체 고문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먼저 고문은 국가가 특정한 집단의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예컨대 '테러리스트''좌파혁명가''간첩''중범죄인'등의 의심을 받는 사람은 국가와 사회에 위험을 초래하는 '불순분자'로 간주된다. '불순분자'들의 범죄 혐의와 위험성은 왜곡.과장되며, 이들에 대한 인권 존중은 사치스러운 췌언(贅言)으로 취급된다. 이들에 대한 고문과 가혹 행위는 '국가 안보'나 '진실 발견'의 명분 아래 행해지며, 인간 본성에 숨겨진 야수성은 고문과 가혹 행위의 강도를 높이게 만든다. 이들이 무고한 시민일 수 있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불순분자'들의 '인권'을 따지는 자는 반국가적 의도를 가진 수사의 훼방꾼이거나 범죄인들의 동맹자로 취급된다. 특히 국가 지도자와 정부가 고문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을 슬그머니 방기하고, 고문도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하다는 악마적 요설(饒舌)에 귀를 기울일 때 고문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법이다.

*** 군사력 의존 정책 확 바꿔야

부시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도 고문을 소수 저질 군인의 우발적 일탈 행위로만 치부하고, 이번 사태를 반미주의자가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강하게 표시했다. 그러나 과거 후세인 정권의 고문이 단지 수사관 개인의 몰지각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었듯이 이번 사태도 개인의 문제로만 축소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인한 반미 의식의 고양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바로 미국 정부의 탓이다.

미.영 양국 정부는 전 세계의 공분을 일으킨 이번 사태의 책임자들을 단호하게 처벌해야 함은 물론이고, 아랍권과 인권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과 정책을 근본적으로 되돌아 보아야 한다. 두 나라는 "제국의 선택은 지배인가 리더십인가"라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도덕적 지도력을 상실하고 군사력에 의존하는 '제국'의 지배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조 국 서울대 교수 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