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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종살리기>지리산 명물 구상나무 군락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자욱한 구름바다를 딛고 서있는 병풍같은 기암괴석들 사이로 구상나무가 파란 잎새와 청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늘로 날씬하게 뻗은 모습들이 속세를 초월한양 늠름한 기상을간직하고 있다.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활엽수 단풍들과 어울려 가을의 현란함과 신비함을 막 연주해 내려하고 있다.듬성듬성 앙상한 몰골의 고사목이 이국스러움을 느끼게 한다.마 치 선경(仙景)에 들어온 착각을 갖게한다.
경남산청군삼장면 지리산 하봉(下峰)주변.최고봉인 천왕봉 동북쪽 능선을 따라 5㎞ 떨어진 해발 1천7백81의 하봉이 사계절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구상나무로 포위돼 있다.
지리산 동쪽 끝자락인 삼장면유평리 새재마을에서 출발하는 등산로의 울창한 나무터널을 따라 경치가 빼어난 조개골을 오르다 보면 해발 1천를 넘어서면서 구상나무가 간간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1천5백쯤에 이르자 웅장한 산세를 배경으로 한 가파른 경사지에 군락지가 숲을 이뤄 다가온다.키 20여에 달려있는 뾰죽하면서도 부드러운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다.가끔 속살이 붉은 천연기념물 주목(朱木)과 구상나무와 비슷한 가문비나무등 희귀목도 등산객들을 반겨준다.
구상나무는 이곳뿐 아니라 천왕봉을 중심으로 중봉(中峰).세석.토끼봉.반야봉.명선봉등 지리산 봉우리 주변마다 군락으로 자생하는 「지리산의 명물」이 되고있다.

<지도참조> 지리산 자연 생태계를 상징하는 깃대종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동부관리사무소 직원 박성덕(朴聖德.48)씨는 『지리산 아고산대(亞高山帶) 침엽수림의 우점종인 구상나무는 해발 1천 이상인 곳에서 아름다운 천연림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며 『수형이 화려해 경관이 아름다울뿐 아니라 재질이 뛰어나 고급가구 목재등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구상나무 가지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부드러운 치마를벗어 걸어놓고 목욕을 하는 바람에 선녀들의 기품과 교양을 전수받았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지리산이 구상나무로 유명해진데 대해 전문가들은 이 지역의 독특한 기후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경상대 학술림관리소 나영학(羅榮鶴.41)소장은 『구상나무는 응달에서 잘 자라는 음수(陰樹)이기 때문에 안개끼는 날이 잦아습기가 많고 햇빛을 가려주는 고산지대 산등성이 많은 지리산에서주로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학계에서는 이 나무가 제4빙하기 시대 한반도의 기온이 낮았을때 널리 분포하다가 1만~2만년전부터 기온이 올라가자 고산지대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 기후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는 구상나무가 「살아있는 화석나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기후 온난화와 대기.토질 산성화 영향으로 구상나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공단측은 최근 이 나무를 인공번식하려고 야생 묘목을 제석봉 부근에 옮겨 심었으나 일부가 죽어 낙심하기도 했다.강우량 감소와 점차 따뜻해지는 기후 변화가 겹쳤기 때문으로 공단측은 분석하고 있다.
녹색연합 김타균(金他均.29)간사는 『광양만등 인근 공단 개발과 도시화 과정에서 배출된 오염물질들이 지리산을 덮고 있기 때문인지 고사목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계속된 남벌및 도벌은 지리산이 67년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자취를 감췄으나이제는 각종 공해로 인해 원시림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관계자들은 관광객들의 잦은 출입도 구상나무 보호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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