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미술관 걸작展 紙上감상-佛르아브르 출신 장 드뷔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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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다른 작가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꾸미지 않은 평범함」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존의 탐미적인 예술관행에 저항하는 일관된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
구겐하임 미술관 걸작전 지상감상 마지막을 장식할 작가는 바로프랑스 르아브르 출신의 장 드뷔페(1901~85)다.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62년도 작품 『상서로운 순간』.
이 작품 하나만 보아도 검은색 윤곽선으로 둘러진 불분명한 형태와 뭉개진 색등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두 요소인 형과 색 대신 살아있는 듯한 도발적인 자연을 표현하는데 더관심을 쏟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미술이라는 뜻의 「아르 브뤼(Art Brut)」는 드뷔페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미술계의 상식적인 범주 밖에존재하는 미술형태를 일컫는다.어린아이나 원시인.정신병자들의 낙서처럼 누구를 모방한 것도 아닌 단순함과 직접성 을 가진 독창적인 작품세계가 특징이다.
이 작품도 정렬되지 않은채 어수선하게 늘어선 선과 질감이 느껴지도록 두텁게 칠한 물감등의 표현방식에서 아르 브뤼의 특성을그대로 맛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유화로만 그려졌지만 50년대에는 유화 물감에 모래를 섞어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든 더 원시적인 작품을 만들기도했다.화가가 그린 미술작품치고는 세련미가 떨어지는 투박한 작품을 통해 지나치게 세련된 기존 서구사회 문화를 공격한 것이다.
드뷔페가 가치를 둔 것은 평범하면서도 세속적인 것이었다.
드뷔페는 원시인들이 사회적 억제에서 문명인들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자연과 더 깊이 접촉할 수 있다고 믿고 이들의 방식을 따른 것이다.단순히 사물의 겉모습을 묘사하는 서구사회의 낡은 방식을 벗어나 문화보다 자연,문명보다 원시,관념보다 감성을 더 중시하는 추상의 전통을 따랐다.
형태를 배제한다고 해서 눈에만 그럴듯한 완전한 추상작품도 거부했다.이런 작품들은 보통 사람들의 진정한 삶과는 아무 관련도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따라서 드뷔페의 작품형식은 추상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아주 구체적인 리얼리티인 셈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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