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및 해외동포학자들이 모여 통일문제를 토의한 중앙일보 주관의 베이징(北京) 통일학술회의가 사흘 일정을 마치고 15일 폐막됐다.이번 회의의 의의와 앞으로의 전망등을 참석자인 장달중(서울대).이홍영(미 버클리대)교수와 천진환 LG 그룹 베이징지사장의 정담(鼎談)으로 정리했다.
[편집자註] ▶이홍영=남(한국통일학술포럼)과 북(사회정치학회)의 학술단체가 공동주최한 이번 회의는 무엇보다도 막연하게 알고있던 서로의 사정을 실감나게 배워간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있다.당국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이같은 모임이 더욱 활 성화돼야 그나마 남북간 대화의 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장달중=북한측의 정치선전적인 요소가 많이 줄어들었다.서로의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천진환=공격적이고 적대적인 대화방법에서 이번에는 방어적이고상호 이해에 바탕을 둔 입장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경제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북한의 어려운 사정등을 언급하지 않은 점등은 남측학자들의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 사례다.
▶장=이번 회의의 중요한 의의라면 남북한이 제3자 개입없이 서로의 합의아래 통일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이다.올초에는 학술회의참가등 대외활동이 많았던 북한이 김정우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의워싱턴 발언이후 위축됐다가 다시 국제무대에 나 선 것이다.
▶천=그 이유가 북한 스스로 당면한 내부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남한측과의 관계조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이번 참석자가 정치학자여서 경제문제가 논의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기존 태도의 변화를 읽 을 수 있었던 점은 성과라 할 수 있다.경제문제는 북한을 변화시켜 가고있다. ▶장=경제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이번 학술회의와 같은 시기에 있은 나진.선봉 투자포럼의 무산과정을 보면 아직도 북한은 남한이 경제문제를 이용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나진.선봉 투자포럼의 무산 에도 불구하고 이런 회의가 성사된 것 자체가 북한이 자신들의 통일론이나이념변화에 대한 남쪽의 이해를 구하고 토론의 기회를 가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천=대화상대가 남쪽이기도 하지만 역시 아직도 자율적인 부분이 부족한 점은 아쉬웠다.토론보다도 이미 계획된 원고를 읽는 수준이다.개인적인 접촉에서 이야기하는 수준도 마찬가지다.
▶이=그러나 북한참석자들이 지난해와는 자세가 많이 달라져 상대방을 이해하려 애썼다.북한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유연해지고 선전적인 요소도 많이 사라졌다.
▶장=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선전적인 입장에서 토론적인 입장으로 전환해 논의를 구체화했다는 점이다.통일이 가져올 수 있는파급효과에 대한 인식이 커졌지 않은가 하고 느꼈다.
▶장=이번 회의에서 경제교류 문제보다 민족대단결등 사상문제를강조한 것은 남북간 경제교류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본다.
▶이=그렇다.이번 회의에서 민족적 통일을 강조하면서 투쟁이나갈등을 뒤로 미루는 것은 북한의 총체적인 사상체계가 바뀌는 과정으로 통치이념이 보다 민족적인 면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아닌가 한다.중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있었지만 앞으로 북한이 당면한개방.개혁을 사상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천=북한이 한총련사태나 나진.선봉포럼 무산에 대해 상당히 공세적으로 나올줄 알았는데 공식자리에서 비교적 의제에 충실했던것은 의외다.민감한 사안에 대한 자극을 자제함으로써 경제분야에서 무언가 남측의 화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장=나진.선봉포럼이 무산된 상황에서 이뤄진 이번 학술회의 참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는게 북한측 설명이다.북한의 대남 이해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본다.
▶이=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정책방향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미국.일본과 접촉하고 관계를 개선하는데서 남측과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있는 것이다.새로운 생존전략의 하나로 남쪽과의 대화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 이다.
▶장=대미.대일 관계에 비해 대남 자세가 상당히 경직돼 있는것아닌가.
▶이=정부간의 대화는 어렵지만 이런 학술회의를 통해 민간급 대화가 꾸준히 진전돼 나가는 점은 다행이다.
▶천=북한이 이번 회의를 통해서도 계속 강조한 것은 대미.대일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는데 대해 남한측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보지말고 자연스런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장=이번에 북한측이 정경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우리 정부도 사실상 정경분리를 못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정부의 현실적인입장과 일치하는 모순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북한측 참석학자들이 경제분야를 잘 알지못하는 정치학자들이어서 이번 회의 논의 자체를 그대로 북한측 입장으로 보기는 어렵다. ▶천=그렇다.북한학자들이 남북한의 교역량이나 품목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놀랐다.정경분리 문제도 정치적인 논리에서 설명하다보니 문제가 생긴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정경분리는 북한이 자신들의 공식논리로 받아들인다면 상당히 심각한 내부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용이 힘들다.현실적으로는 기업들을 선별 초청하는등 정경분리를 북한도 하고있는 셈이다. ▶장=어쨌든 남북경협을 둘러싸고 우리 정부와 기업사이에있었던 갈등적인 요소를 이용하려 했던 북한이 정경분리 불가입장을 밝혔다는건 흥미로운 일이다.
▶천=한편 회의형태를 좀더 전문화해 분과별로 문제를 논의함으로써 시간을 아끼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북한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느 수준까지 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스럽다.좀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분위기가 필요하다.
▶장=공식적인 회의에만 너무 배당하지 말고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논문 발표나 토론보다도 소파등에 앉아 문제를 논의할수 있는 시간을 더욱 늘려나가야 한다.
[정리=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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