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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공무원연금 개혁안 다시 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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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행정학 교과서는 정부 정책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할 ‘형평성’ 기준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수직적 형평성으로서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둘째는 수평적 형평성으로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두 기준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대체로 국민들은 수직적 형평성보다는 수평적 형평성이 안 지켜질 때 정부 정책에 더 불만을 갖게 된다.

얼마 전 발표된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해 대부분의 여론이 부정적이며 다수의 국민이 불만스러워하는 것도 국민연금과의 수평적 형평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즉 몇 십 년 뒤의 재정위기를 걱정해서 애당초 많지도 않은 국민연금 급여액은 대폭 줄였으면서, 이미 재정위기에 봉착해 있고 급여액도 훨씬 후한 공무원연금은 살짝 줄이는 생색만의 개혁을 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과 형평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타당하다. 그런데 이번 개혁안이 정말로 국민연금과 비교해서 불공평한 것일까? 이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매우 그렇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고 명확하게 결론이 날 문제가 아니다. 수평적 형평성을 비교하는 기본은 두 제도의 수익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과 공무원 개혁안의 수익을 비교할 경우, 단순히 변화된 제도상의 수익률만을 고려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우선 진정한 수평적 형평성 비교가 되려면, 연금뿐만 아니라 보수와 퇴직금을 포함한 전반적인 ‘보상’이란 관점의 비교가 필요하다. 연금액은 공무원이 훨씬 후하지만, 공무원의 퇴직수당은 민간의 퇴직금보다 훨씬 적으며 보수 수준도 낮다. 30년 근무한 민간기업 퇴직자가 퇴직금으로 1억5000만원 정도를 받는다면, 공무원 퇴직자는 6000만원 남짓 받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공무원 보수는 민간기업 종사자의 90% 수준이다.

공무원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어 웬만한 민간기업 은퇴자들은 제도상의 평균적인 급여율(30년 가입 시 30%)보다 낮은 급여를 받게 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공무원 평균보수 정도를 받는 민간기업 종사자의 30년 가입 시 급여율은 25% 이하가 된다. 그 밖에 소득액 상한선의 차등, 연금개시 연령의 차이, 기존 구조에서 개혁된 구조로 전환될 때까지 이행기간의 상이, 기대수명의 증가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모두 고려해서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만을 고려하고, 대강의 산술로 계산해보면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과 얼추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연금개시 연령 차이, 기대수명 증가 등 그 밖의 이유까지 고려한다면 공무원연금이 조금 더 후하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할 또 다른 기준으로 ‘공개성’이 있다. 국가기밀 등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면, 정부 정책은 그 내용과 효과 등이 올바르게 공개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개혁안에 대한 행정안전부의 설명자료는 충분치 못한 감이 있다. 공무원연금에 유리한 것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공청회도 좋고 난상토론도 좋다. 이번 개혁안과 국민연금의 비교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무원연금이 정말 국민연금보다 후한 것으로 나타나면, 개혁안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공무원들도 공정하게 비교한 결과가 그렇다면 아쉽더라도 수용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수의 국민도 공무원연금의 높은 급여 수준이 정당한 대가라면, 세금으로 공무원연금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와 퇴직수당 역시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피용자는 공정한 보상을 받는 것. 이는 민간기업이나 정부나 동일하게 지켜야 할 규칙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