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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地圖>26.영화-홍콩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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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무림일기』의 시인 유하는 얼마전 자신의 산문집을 내면서 『이소룡세대에게 바친다』는 타이틀을 붙였다.
「리샤오룽(李小龍)세대」.
이 말 자체엔 「4.19세대」「유신세대」「광주세대」등의 호칭이 주는 사회.정치적 혹은 역사적 울림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
하지만 리샤오룽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그와 함께」 청소년기를보냈던 지금의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세대 들은 흘려보낸시절의 문화적 풍경을 아련히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정무문』『당산대형』『용쟁호투』『맹룡과강』등에서 보여준 리샤오룽의 눈부신 활약은 검정 교복 단추를 두세개쯤 풀어헤치고 건들거려 보아도,빡빡 깎은 머리를 가발로 가리고 고고 클럽을 출입해 보아도 충족되지 않았던 우리들의 집단적 원망 (願望)을 완벽하게 체현(體現)하고 있었다.리샤오룽은 자신이 출연한 다섯번째 작품 『사망유희』를 촬영하다 1973년 32세의 나이로 요절함으로써 청춘의 우상들을 모신 만신전(萬神殿)에 등재된다.
이처럼 몸짓과 말투에서부터 의식의 저층(底層)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을 사로잡은 홍콩영화가 한국 관객들과 대중적으로 처음 만난 것은 67년 『방랑의 결투』로까지 소급된다.이어 왕위(王羽)가 출연한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등 「외팔이 」시리즈가 무협영화의 번창을 예고했다.
60년대말에서 70년대초 무렵엔 단순히 홍콩영화를 수입하는데머무르지 않고 양국이 합작품을 만들어내거나 또 현지에 가 직접활동한 감독들도 있었다.신상옥감독이 신영균을 내세워 『관외쌍웅』『천년호』등을 제작한 것이 한 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을펼친 인물은 정창화감독이다.
쇼브러더스의 초청으로 68년 홍콩으로 건너간 정감독은 『천면마녀』『아랑곡』등을 내놓는등 왕성하게 작품을 생산해냈다.그중에서도 73년에 만든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뉴욕.샌프란시스코등 미국의 대도시에서 선풍을 일으켜 「동양의 서부 극」이란 극찬을 끌어내기도 했다.창졸간에 리샤오룽을 떠나보낸 홍콩영화계는갑자기 멈춰버린 관성으로 중심을 잃었으나 그 공백을 쿵푸 코미디물이 메웠다.청룽(成龍)의 『취권』,훙진바오(洪金寶)의 『귀타귀』와 「복성(福星)시리즈」,『최가 박당』시리즈등이 쏟아져 나온 것이 이 시기였다.특히 79년 가을 서울에서 개봉된 『취권』은 90만명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들이는 보기드문 성과를 올렸다.청룽은 슬랩스틱 코미디와 쿵푸 액션이란 상반되는 장르를 하나로 융합하는데 성공함으 로써 자신의 시대를 연 것이다.
홍콩영화는 일찍이「동양의 할리우드」로 불릴만큼 다산성(多産性)을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성 있는 작품은 거의 산출해내지못했다.무협영화나 쿵푸영화는 무협소설이 그렇듯 고유한 장르적 관습에 따라 일괄생산되는 방식을 취하기 일쑤였다 .이런 뿌리깊은 제작방식은 홍콩영화를 스타와 프로듀서의 영화이게끔 했다.이런 시스템에선 영화감독이란 말 그대로 일괄공정라인을 「감독」하는 기능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세계 영화계서도 주목 그러나 70년대말부터 참신한 감수성으로 무장한 젊은 인물들이 수혈되면서 일기 시작한 「새로운 물결」은 80년대 중반이후 결과물을 내기 시작해 스타일과 주제의 혁신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끌었다.
그런 일군의 감독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인물이 왕자웨이(王家衛)다.그를 향한 한국의 젊은 영화학도나 영화팬들의 애정은 지대해 배우가 아닌 감독이 이토록 추앙받은 전례가 없을 정도다.영화학도들의 졸업작품중 80% 이상이 『중 경삼림』을 흉내냈다거나 심지어 충무로에서 활동중인 감독들중에도 왕자웨이 영화의 분위기를 작품 속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말도 들린다.
데뷔작 『열혈남아』(88년)로부터 최근작 『타락천사』(95년)에 이르기까지 왕자웨이 영화는 흔히 시간과 인간 상호간의 소통(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석되곤 한다.『중경삼림』에서 진청우(金城武)가 『이 세계엔 기한(期限)이 없는 것은 없는가』라고물은데 대해 『타락천사』에선 『이 세계엔 기한이 없는 것은 없는 것같다』고 되받고 있다.
그러나 왕자웨이가 이런 철학을 화면에 담아내는 방식은 작품의편수가 쌓여갈수록 지극히 감각적이다.『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에선 점프 컷과 쉴새없는 들고찍기(핸드 헬드),어안렌즈의 사용등으로 상당한 역동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표피적인터치이기도 하다.오히려 『열혈남아』나 『아비정전』에서 보여주었던 보다 차분한 형식이 주제와 조응하는 것처럼 여겨진다.이 때문에 일부에선 그를 21세기의 시네아티스트로 손꼽기를 유보하고있다. 시기적으로 따질 때 왕자웨이보다 먼저 다뤄야 할 감독이우위썬(吳宇森)이다.저우룬파(周潤發)를 일거에 이른바 「누아르스타」로 키워냈던 『영웅본색』(86년)시리즈나 『첩혈쌍웅』『첩혈속집』등은 홍콩영화를 스타중심에서 감독중심으로 이 동시키는데크게 공헌했다.
그는 카메라의 눈을 홍콩의 뒷골목과 어두운 세계로 돌림으로써홍콩영화의 장르적 확산에 기여했다.우위썬의 영화에 대해선 「폭력의 미학」이란 용어가 즐겨 적용된다.「폭력의 미학」은 「죽음의 미학」이란 수사만큼이나 퇴폐적 심미주의의 냄 새가 짙게 묻어있는게 사실이다.
***국내 영화계 큰 영향 그리고 그의 영화는 남자들 사이의의리와 명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이를테면 마초(macho)적인 세계다.이런 세계는 세밀한 묘사에 절묘하면 사회파 영화로 성공하게 되지만 길을 잘못 들면 허풍스러워지게 된다.아니나 다를까.할리우드 로 건너가 『하드 타겟』과 『브로큰 애로우』를 내놓은 우위썬은 이전에 보여주었던 영화의 밀도와 응집력을 거의상실해버리고 「액션의 미학」이란 껍데기만 간당간당 잡고 있는 형국이다.
왕자웨이.우위썬에 비해 국내에 덜 소개됐지만 유럽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주목받아온 감독으로 쉬안화(許鞍華)와 관진펑(關錦鵬)을 들 수 있다.쉬안화는 현재 개봉중인 『여인사십』으로 한국관객들과 처음으로 만나고 있다.50세를 바라보는 이 여류감독은코미디에서 멜로물.무협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재능을보이고 있다.『객도추한』『호월적고사』등 대표작을 통해 그는 가족의 의미와 현대인의 정체성을 다루고 있다.
동성애자로서 홍콩 멜로드라마의 전통 속에 놓여 있는 관진펑은특히 여성 문제에 천착하는 감독이다.장만위(張曼玉)의 연기가 돋보이는 『완령옥』이나 『인지구』『인재뉴약』등 일련의 영화에서그는 상처받은 여성들의 내면에 다가가고 있다.
골수 홍콩영화팬이라면 기사의 말미에 오도록 쉬커(徐克)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 것을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그에게는 『촉산』등으로 무협영화에 SFX를 도입해 홍콩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향상시키면서 침체됐던 홍콩영화에 새바람을 일으킨 공로가 당연히돌아가야 할 것이다.
아무튼 지난 30년간 홍콩영화는 체계적인 제작시스템과 한국 관객들과의 정서적 유사성을 무기로 국내 영화소비시장 뿐만 아니라 생산(제작)현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멀리 갈 것도 없이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최근 2,3년 사이에 개봉된 몇몇폭력물과 코미디물에서 홍콩영화의 잔영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여태까진 다소 일방적이었던 이 유착관계가 쌍방관계 또는 역전관계로까지 진행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는 우리 젊은 영화인들에게 달렸다.그 새로운 30년이 시작됐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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