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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개선 촉구 전단, 풍선 이용해 북한 보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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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탈북자의 대모’로 통하는 미국인 북한인권운동가 수전 숄티(49·사진)는 앞섶엔 푸른 리본을 달고 손목엔 검은 고무 팔찌를 차고 나타났다. 그는 “리본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팔찌는 북한 주민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이라는 영문이 새겨진 검은 팔찌는 항상 착용한다고 밝혔다.

1989년부터 민간단체 디펜스 포럼의 회장을 맡으면서 북한 인권문제에 발벗고 나서온 그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포함한 탈북자들의 미국 의회 증언을 여러 차례 성사시켰다. 2004년에는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부터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매년 여는 등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운동을 활발히 벌여왔다.

남편 채드윅 고어가 창립한 디펜스 포럼뿐 아니라 북한 인권 관련 단체 및 모로코에 점령된 서사하라의 난민을 위한 재단도 이끌고 있다. 제9회 서울평화상을 받기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시상식은 7일이다.

-서울평화상을 받게 된 소감은.

“탈북자들을 대신해 겸손한 마음으로 상을 받겠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분수령이 됐으면 한다. 서울에 온 김에 황장엽 씨를 만나고, 풍선을 이용해 삐라를 북한으로 보내는 등의 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

-북한인권에 대한 무관심을 힘든 점으로 꼽아왔는데.

“정말 너무나 힘든 투쟁이었다. 세상의 무관심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도 많다.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북한 인권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남한 정부가 가장 소극적이어서 실망했다. 참혹한 인권 유린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 수단 다르푸르에선 30만 명이 희생됐지만, 북한에선 김정일 집권 뒤 10년 동안 300만 명이 아사했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에 직접 들어가 이런 상황을 목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다르푸르에는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 등이 방문하며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북한은 그게 안 된다. 그래서 더욱 탈북자의 미국 의회 증언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복도를 뛰어다니며 의원실 방문을 두드렸고, 주차장을 누비며 전단을 꽂았다. 참상이 알려지자 의원들은 눈물을 흘렸고, 시민들은 북한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문의를 수없이 해왔다. 자신들이 겪은 참상을 증언할 용기를 보여준 탈북자들의 덕이 크다.”

-미국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는데.

“북핵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핵 문제에 끌려가는 건 김정일에게 주도권을 쥐여주는 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건 알지만 북핵 문제에 우선순위를 뒀기에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 인권엔 국경이 없고 북한인권문제는 전세계의 문제다. 미국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지만 수동적이었다. 어떤 (미국) 외교관이 탈북자를 수용하기 위한 시설을 영사관에 설치하고자 했다가 미국 정부에 의해 저지당했던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럴 게 아니라 영사관마다 탈북자 수용 시설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지난달 미 하원이 북한인권법 시한을 2012년까지 연장했고, 탈북자가 처음으로 미국 영주권을 받았다.

“2004년 통과된 북한인권법은 매년 2400만 달러를 북한 인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그러나 실제 집행된 게 없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번 시한 연장 승인에 거는 기대는 크다. 일부 프로그램의 지원액이 줄긴 했지만 심각한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연장 법안을 통과시킨 건 상징적 의미가 있다. 북한인권특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대사로 격상했다. 새로 선출될 대통령이 이 법안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다행히 두 후보 모두 이 문제에 관심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존 매케인 후보는 ‘북한자유주간’ 행사 때 직접 참석한 적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있다. 버락 오바마 후보는 북한인권법 통과에 중요한 역할을 한 조셉 바이든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목했다.”

-서울평화상의 상금 20만 달러의 용처는?

“일단 빚을 갚는 데 써야 할 것 같다. 농담이면 좋겠는데 진짜다(웃음). 사비를 투자해가며 근근이 꾸려왔다. 적자를 보지 않으려면 미리 재정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계획 세우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나. 17세 때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했고, 20대에는 당시로서 최연소 의원 보좌관을 지내면서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좌절도 많이 했지만 인권운동을 포기 않고 계속 하는 이유다. 언젠가는 북한주민이 자유를 되찾고 김정일 동상이 무너지는 걸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앞으로 계획은.

“12월에도 워싱턴·뉴욕·태국 등 각지를 돌며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또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월마트 등에서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도 벌일 생각이다. 중국이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하는 건 야만스럽고 비인간적이다. 당장 중단돼야 한다. 이런 뜻을 불매운동으로 전하려고 한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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