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띔! 문화 내비게이션] 고국을 향한 그리움 캔버스에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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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숨과 획들 - 송현숙전=“그리움이 그림이 되기도 하고, 혹은 그림이 그리움을 낳기도 하지 않는지요.” 송현숙(56)씨의 그림을 대하면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명대사가 생각납니다. 올리브색 개량한복을 입고 전라도 사투리를 짙게 구사하는 촌부(村婦). 송씨의 첫인상은 그러했습니다.

전시장서 만난 그는 독일집 텃밭에 두고 온 마늘·배추·깻잎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주서 여고를 졸업하고 1972년 간호보조원이 돼 독일로 갔습니다. 병원서 일하는 틈틈이 고향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서툰 그림에 담다가 77년 함부르크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화가 꿈을 키웠습니다. 그는 달걀에 물감을 섞어 쓰는 서양 중세 안료인 템페라를 귀얄(풀칠용 거친 붓)로 찍어 캔버스에 몇 개의 선으로 항아리·횃대·고무신을 그립니다. 제목은 ‘11획’(사진)‘23획’. 고향 빛깔로 고향 것들을 그리되 단순한 풍물 그림이 아닙니다. 캔버스에 붓질을 얼마만큼 절제해야 하는지, 형식이 어떻게 내용과 어우러지는지, 그림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송씨는 83년에야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습니다. 몸은 독일에 있되 마음은 줄곧 고향을 향한 그입니다. 30여년전 말씨를 쓰는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30여년 전 우리네 얼굴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그리움이요, 정신의 흔적입니다.

▶10월 26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무료/ 02-720-1524

미술 담당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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