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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기행>"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著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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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전자사회를 따라가느라 「정신없는」현대인들.책을 접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지만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격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책을읽지 않고는 사회의 다양성을 소화하지 못하는 딜 레마에 빠져 있다.인간의 다양한 사고와 수없이 쏟아지는 연구결과를 공유하는데는 독서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독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미로운 삶을 꾸리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독서의 역사』(A History ofReading.Harper Collins刊)는 독서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에세이 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글자의 발명,독서문화의 변천,독서의 사회적 역할,금서 의 역사,북디자인의 변천사등이 저자의 풍부한 독서경험을 바탕으로 설명된다.
책사랑은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이다.10세기 페르시아의 장서가비지에르의 기행은 단연 챔피언감.당시 11만여권을 소장했던 그는 책 때문에 여행도 쉽게 떠나지 못했다.여행이 불가피할 때는소장 도서를 몽땅 낙타 4백여마리에 나눠 싣고 다녔다고 한다.
그것도 언제든지 책을 쉽게 빼들 수 있도록 낙타가 제목 글자순으로 이뤄진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특별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독서형태가 눈으로 읽는 묵독으로 바뀌면서 인류사회에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성 아우구스티누스까지도 묵독이 주는 자기성찰 효과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그의 『참회록』에서 일화로 소개할 정도다.이때부터 책은 어디에서나 휴대가 능한 품목으로 자리잡으면서 성직자등 일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고 인류문명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원동력 역할을 떠맡고 나섰다.지금과 같은 형태의 묵독은 서구에서는 10세기에 이르러서야 보편화됐다.
그 전의 독서는 교회등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읽으면 다른 사람이 듣는 형태로 진행됐다.성경을 읽을 때는 눈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읽어야 신의 뜻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몸을 마구 흔들어대기도 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랜 글자기록은 지난 84년 시리아에서 발견된 기원전 4000년께의 자그마한 진흙판이다.당시 글자의 발명은 상업적 목적에서였다.어느 집이 가축 몇마리를 소유했는지 따위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초기의 진흙판과 파피루스는 책의 형태로는 적합하지 않았다.양피지와 송아지피지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크기로 자를 수 있게 된다.
기원전 2세기에 나온 양피지는 서구에서는 8세기 뒤 이탈리아에서 종이가 등장하기까지 책을 만드는 재료로 널리 각광받았다.
양피지를 계기로 오늘날과 같은 종이의 크기도 등장했다.한번 접은 것이 2절지,그것을 또다시 접은 것이 4절지, 다시 한번 더 접은 것이 8절지로 자리잡게 된 것.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1세가 통치하던 1527년에 종이의 규격을 어기는 사람들을 구속하는 법이 마련되기도 했다.
책이 지금의 미술품처럼 컬렉션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12세기말로 나타난다.당시 고리대금업자들이 돈을 빌려주면서 책을 담보로 잡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1524년판 페트루스델피누스의 『에피스톨레』(Epistolae)의 경우 1719년당시 화폐로 1천리브르에 거래됐다.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대충 3만달러에 해당한다.당시에는 책이가보(家寶)로도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책의 역사에서 금서를 빼놓을 수 없다.독서가 지니는 막강한 힘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검열이 존재했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도 기원전 411년에 모든 저작물이 불타는 운명을 맞았다.기원전 213년 국민의 독서 자체를 말살하 려던 진시황의 분서갱유 또한 유명하다.1세기 초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경우 코르넬리우스 갈루스와 오비디우스를 국외로 추방하고 그들의작품을 금지시켰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검열광 앤서니 콤스탁을 빼놓을 수 없다.그는 19세기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검열단체인 「죄악추방협회」(Society for the Suppression of Vice)를 조직,금서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그가 읽은 유일한 책이성경이라는 일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콤스탁의 등쌀에 못이겨 자살한 작가들만도 윌리엄 헤인스등 15명에 이른다.지난 1981년에는 칠레의 피노체트가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에 대해 개인의 자유를 주창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출판을 금지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저자 1948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생한 망구엘은 곧바로 이스라엘로 건너가 6세까지 텔아비브에서 거주했다.그후 아르헨티나와 영국 등지를 돌며 교육을 받았다.지금은 파리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로 세계적 명성 을 날리고있다.16세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중 남미 문학의 거장 호르헤 보르헤스를 만난다.그는 그후 2년동안시력을 거의 상실했던 보르헤스에게 글을 읽어주면서 다양한 장르에 눈을 뜨고 아르헨티나의 문학적 자 양분을 흡수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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