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뒷맛 씁쓸한 대자보철거 몸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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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5일 오전 연세대 도서관 앞.김병수(金炳洙)총장등 40여명의보직교수들이 도서관 기둥에 붙은 대자보를 뜯어내는 순간 도서관앞은 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교수님들,대자보를 이런 식으로 짓밟아도 되는 겁니까.』『학칙을 지켜.검인 절차를 밟지 않은 대자보는 붙일 수 없다는 걸몰라.』 교수들은 한장의 대자보라도 더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썼고 학생들은 게시판 주변을 겹겹이 둘러싸고 격렬히 저항했다.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 틈을 빠져나가 문과대 학생들이 임시 학생회로 사용중인 천막을 철거했다.한 학생이 『유신이나 5공도 아닌 문민정부 시대에 이런 일이 교수님들에 의해 저질러질 수 있나요』라고 따져 물었다.
학생들의 말처럼 암울했던 그 시절에도 교수들이 학생들의 대자보를 떼어내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도 3년이 지난 지금 이같은 일이 벌어져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생들은 『왜 우리의 순수함을 몰라주느냐』고 말하지만 그들의「순수함」 때문에 종합관은 불탔으며 5천여명이 경찰에 입건되고1천여명 이상이 다쳤다.
학생들은 또 대자보 철거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말하지만 헌법 취지는 검증되지 않은 이론과 주장을 내키는대로 표현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물론 대자보에 대해 학칙에 따른 검인절차를 밟으라는 교수들에게도 반성할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동안 수많은 불법 대자보가 나붙었지만 서로가 눈치를 살피며 이를 방치해 왔던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날 교수와 학생간의 승강이는 20여분만에 끝났다.교수들은 『앞으로도 학칙을 엄격히 적용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도서관 앞 민주광장에는 교수들을 비난하는 학생들의 핸드마이크 소리가 오후 내내 끊이지 않았고 떼어낸 대자보의 두배가까운 대자보가 새로 나붙었다.극심한 경쟁속에서 「세계 일류대학,대학의 세계화.국제화」는 서로 힘을 합쳐 노 력해도 일궈내기 쉽지 않은 과제다.
때문에 이제 교수와 학생들이 불신의 장막을 걷고 함께 나서주길 기대해 본다.
김준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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