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공연 "처녀비행" 연극계 현실 실감나게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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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오늘 이 땅에서 소극장 연극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작품보다는 「돈벌이」가 먼저고 예술은 포기한채 관객에 어떻게영합할 것인가를 고민하며,그래서 만들기보다는 「찍어내기」를 계속해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을 화두로 연극계 현실을 그려낸 연극 한편이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다.대학로극장(대표 정재진)에서 공연중인 『처녀비행』(이만희 원작.김광보 연출).연극을 사랑하는 젊은이들과 젊은 연출가.작가가 소극 장 하나를 마련하고 그것을 꾸려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가난한 연극인에게 소극장 마련은 꿈이다.턱없이 비싼 임대료를내고 극장을 마련한들 운영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작품 한번 잘못 올리면 10년 쪽박차기 십상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노처녀 작가와 30대 젊은 연출가 두 사람이 어 렵게 빚을 내극장 하나를 마련한다.그전까지 한계상황이지만 그런대로 순수했던두 사람은 작품을 올리면 올릴수록 늘어나는 빚더미에 깔려 변해간다.인기드라마 『모래시계』를 흉내내고,서부활극을 패러디하고,토속과 현대를 결합해보고,동물을 의인화한 갖은 작품들을 올려보지만 평론은 냉담하고,매스컴은 외면하며,객석은 썰렁하다.연출가는 결국 『벗자』고 배우들에게 말한다.
『최후의 수단이다.관객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발가벗은 순수를 보여주자.자,벗어,벗어,너도 벗고,너도 벗어.』 젊은 배우들은 이를 거부한다.
『굶고 외면당하고 인정못받아도 좋다.내 손으로 내 작품을 만들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공연을준비하는 배우들의 연습이 계속되면서 무대는 막을 내린다.젊은 작가.연출.배우들의 『처녀비행』은 결국 처참한 「곤두박질」로 끝난다. 연극계 외설논쟁의 본질에는 벗겨서라도 현재의 가난에서헤어나고 싶은 유혹이 본질처럼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이 극은 시사한다.그 유혹을 이겨내며 건강한 연극,좋은작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일은 이미 구도자의 고행,그것 이다.
극은 오늘 연극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주지만 결코 무겁거나진지하지 않다.철저한 패러디를 통해 희화된 모습으로 이 모든 장면들은 구성된다.객석의 쉴새없는 웃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웃고 즐기고 나가는 관객들의 미소가 가시지 않은 얼굴에 잠깐이라도 한국연극의 실상을 같이 생각해주는 순간이 있기를 기대한다는게 젊은 연출자 김광보씨의 말이다.『처녀비행』의 기착지가 연극처럼 「곤두박질」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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