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新문화체험>美사회학대회 참관기-성공회大사회학 조희연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격변의 시점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지난달 16일부터 나흘간 뉴욕에서 열린 미국사회학회(ASA)연례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 나는 이런 물음을 떠올렸다.
「사회변동-기회와 제약」이라는 주제로 6백여개의 섹션에 3천명의 연구자가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는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의 미래」에서부터 「환경활동가와 정보고속도로」「멕시코 치아파 반군의 인터네트 반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다뤄졌다.
필자가 발표에 참여한 아시아사회 연구분과에서만도 47개의 논문이 발표될 정도로 양적 방대함이 두드러졌다.미국적 다원주의의물적.인적 토대가 튼튼함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것은 복지.교육.아동.이민.의료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조직된 특별패널이었다.94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이 복지 축소를 통한 국가재건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의 세부항목들이 학술적 토론의 마당에 올려진 것이다.바로직전에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와 26일의 민주당 전당대회의 시간적 틈새에서 열리게 되어선지 이 토론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각종 정책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낙관적 예측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불법이민자에 대한 각종 규제와 복지혜택의 박탈,노인과 저소득층에 대한 주거보조혜택의 폐지등 복지이슈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뤘다.
이같은 토론을 겪으면서 「사회주의와의 전쟁」에서 화려한 승리자가 되었으면서도 이제 탈냉전시대에 「새로운 시대찾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국민에 대한 복지 삭감전쟁」에 매달리고 있는 미국의 우울한 풍경이 사회학의 논쟁구도에 투영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또 이번 대회에서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은 탈냉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neo-liberal globalism)가 사회학적 상상력에 깊게 각인되고 있다는 점이다.이런 맥락에서 「감옥의 민영화」를 둘러 싼 논의는 매우 상징적이었다.
현단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국내적으로는 민영화.탈규제.
개방화.자유화로 나타나고 있다.「감옥의 민영화」는 70년대 복지국가로 표현됐던 「탈상품화」방향이 이제 국가기관의 민영화를 논의할 정도로 「재상품화」방향으로 역전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주제였다.도대체 근대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인 「사법적처벌권의 독점」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날 비용절감과 수형서비스의 차등화 및 질적 향상등의 논리에서 민영화를 찬성하는 입장과 시장논리와 사법적 정의의 충돌등을거론하면서 민영화에 반대하는 입장이 팽팽한 토론장은 지적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제3세계 학자인 필자에게는 발표논문중 가장 많은 주제의 하나인 사회운동연구가 사회학연구의 이론적.경험적 연구주제로 폭넓게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글로벌 자본주의와 「세계적생산네트워크」의 사회적 규제가 어떻게 가능한가 ▶극소전자혁명.
전자통신혁명이 조성하는 새로운 전자공간을 어떻게 민주적 공간으로 전환할 것인지▶구(舊)사회운동은 어떻게 새로운 트릭(?)을배울 것인지▶사회운동의 글로벌한 차원으로의 확장과 생활문화공간에로의 심화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 지등의 물음과 제안들을 청중석에 앉아 들으면서 좁아져가는 지구촌 사회의 문제제기의 보편성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주류 사회학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세계자본주의 중심지인 뉴욕의 한가운데에서 전개된 지적 공방을 떠올리며 「글로벌 보수주의(global conservatism)」에 대한 비판정신의 건재를 확 인하는 듯 해 흐뭇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